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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Sep 28. 2023

귀벌레

에세이


하루 종일 음악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돼 떠오르는 현상을 ‘귀벌레(earworm)’라고 부른다. (*)

혹시 음악을 듣지 않는데도 마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착각을 한 적이 있다면 귀벌레 현상을 겪은 것이다.

귀벌레 현상에 대해 대개는 미디어에서 수없이 틀어서 무방비로 듣게 된 곡일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단 귀벌레 현상을 앓으려면 반복적으로 들어야 가능하다.

내 경우엔 20대 초반에 숱하게 들었던 메가데스의 음반을 그대로 재생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스래쉬메틀의 명반인 《Rust In Peace》와 《Countdown to Extinction》를 즐겨 들었는데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그냥 일상적인 일을 하고 있는데, 아주 생생하게 음악이 귀에서 들리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생생함이란 대단해서 그저 선율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베이스드럼부터 꽉 찬 기타 굉음에 머스테인의 낮고 시니컬한 보컬음색까지 그야말로 음악이 그대로 재생되는 착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잠깐 음악 천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음악을 열심히 들었으면 그게 그냥 이어폰 없이 재생될까 하는 생각에 마니아로서 뿌듯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한동안 나는 메가데스의 음악을 듣고 싶은데 아쉽게도 그 음반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을 때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요즘이라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검색해서 감상하면 될 일이지만, 그때는 눈을 지그시 감고 메가데스의 음악을 상상하면 되었다. 건전지도 들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이런 느낌보다는 강렬하지 않아도 유사한 기억 능력은 여럿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노래를 들었을 때 그동안 잊고 있던 당시, 그러니까 그 노래를 유독 열심히 듣던 시절에 있던 사건이나 인물 그리고 그때의 감정 같은 것이 생생하게 호출된다. tvN 드라마《응답하라 1994》 역시 이러한 사람들의 습관을 활용한 것이다. 90년대에 청춘기를 보낸 사람들의 추억을 호출하여 충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이때 여러 90년대 소재와 유행어가 나올 뿐 아니라, 노래가 OST로 흘러나온다. 그러면 그 어떤 소재보다도 강렬하게 그때의 감정이 끌려나오기 마련이다. 광고에서 본 상품과 연결된 CM송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노래와 함께 제품의 이미지와 광고의 내용도 함께 끌려나오곤 한다.

또한 최근에는 휴대폰에 컬러링을 쓰곤 하는데 대개는 컬러링을 자주 갈아치운다. 그런데 벨소리의 경우 각 사람마다 어울리는 음악을 연결시키곤 하는데, 그 경우엔 자주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A 하면 G곡이 떠오르고, B 하면 H곡이 떠오르게 된다.

노래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이러한 것 중 알람곡이 최고인 듯하다. 알람곡으로 익숙해지고 난 뒤 다른 곳에서 그 곡을 들으면 즉각적으로 아침의 기분이 떠오르게 된다. 알람곡으로 쓰인 곡은 대개 싫어지고 만다. 그래서 알람곡을 선정할 때는 늘 그 작곡가에게 미안한 기분이 든다.





* 문세영, <종일 머릿속에 음악 뱅뱅...‘귀벌레’ 현상>, 코메디닷컴 뉴스, 201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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