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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밤 Oct 20. 2021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판타지와 평화의 희망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2019~2020)'을 본 후기

브런치에 오랜만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최근 친구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부터였다. 이상하게도 난 예전부터 '북한'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트위터로 Daily NK를 팔로우하고 있는 것도, 대학원 시절 '북한경제론' 수업을 수강한 것도, 얼마 전부터 통일 관련 시민단체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도 모두 '북한'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사를 확장하고 싶어서였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여타 활동들처럼 진지하게 임할 필요 없이 그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북한 관련 로맨스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작품이 방영되고 있을 때 본방사수를 하며 열광하는 쪽은 아니었지만(대학원 시절 현생이 너무 힘들었다), 이제야 제대로 정주행을 하며 작품의 참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tvN '사랑의 불시착' 공식 홈페이지


얼마전 Daily NK의 뉴스를 하나 보게 되었다. 북한에서 '사랑의 불시착'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해당 드라마를 시청하다 적발된 청년 8명이 노역에 끌려갔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외 드라마에 한국 관련 내용이 나오면 궁금해하는 것처럼 북한 사람들도 외부에 비춰지는 북한의 이미지가 궁금한 것일까? 이 뉴스를 보고 북한 사람이 보는 '사랑의 불시착'은 어떨까 상상하며 드라마를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북한에 대한 국내외 다큐를 보면 (코로나19 이전) 북한, 특히 평양에서 스마트폰 사용 비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고, 급속한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고난의 행군으로 탄생한 장마당 세대의 영향으로 북한 내 일부 상거래가 용인되면서 자생적인 금융, 현물 시장 등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사랑의 불시착'에도 그러한 평양의 현대화된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돈주'라 불리는 서단의 엄마는 북한 내에 작동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큰 수혜자로 묘사된다. 각각 러시아, 스위스로 유학을 간 '서단', '리정혁'의 경우도 북한 내에 실존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단면을 보여준다(물론 출신 성분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도 생각보다 북한에서 외부 국가로 유학을 가는 학생들도 많고, 북한으로 유학(교환학생 등)을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중국인 친구(조선족이었다) 중 한명이 대학생 때 김일성 종합대학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놀랍게도 외국인을 위한 클럽도 있다고 하더라. 친구들과 치맥을 하고, 외국인 신분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드라마 속 상황이 완전 판타지는 아닌 것이다. '사랑의 불시착' 보조작가 중에 북한 출신 분이 한 분 계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수업이나 북한 관련 영상, 그리고 주변 얘기를 통해 알게된 이런 내용들이 드라마 속에 나올 때마다 왠지 모를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tvN '사랑의 불시착' 공식 홈페이지


드라마에서 강조하는 공간적 배경은 매우 단순한 구도를 지닌다. 기술 발전이 덜 되었지만 정겨운 시골의 모습의 '북한'(물론 현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편리하지만 재벌 간 암투 속에서 냉혹하기만 한 '남한'. 그리고 북한 남자와 남한 여자, 북한 여자와 남한(국적은 영국) 남자가 낯선 곳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개의 구분된 공간에 있던 남녀가 '사랑'을 통해 하나가 되는 과정은 '사랑'만이 모든 편견과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일 것이다. 사실 문화적 배경이란 그저 한 사람이 가진 특성 중 극히 일부일 뿐 그 사람의 모든 면을 설명해주진 않는다. 어떠한 갈등 상황이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 모든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제시될 수 있다. 이처럼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평화를 위한 '사람' 그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의 전개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 북한 군인, 국정원 요원들이 휴전선을 두고 대치하는 상황이 묘사되기도 했다. 깊은 유대를 쌓아온 '윤세리'와 북한 5중대 대원들은 이러한 대치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향해 애틋한 말을 던지곤 했는데, 그걸 보던 나는 속으로 '아, 북한 사람들이 저렇게 남한 사람들과 친한 티를 냈다가 혹시 수용소에 끌려가는 건 아닐까...' 이런 (쓸데 없는) 현실적인 생각이 들곤 했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확대되면서 현실과의 괴리가 더 크게 느껴졌달까. 괜스레 현실의 북한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해지곤 했다.


하지만 사랑의 불시착을 정주행하면서 이 판타지 드라마가 노래하는 '평화의 희망'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젠가 북한 사람들과 서로의 문화 차이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는 날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서로를 배워가는 시간을, 드라마를 통해서 미리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마치 곧 개봉할 긴 장편 영화의 주요 예고편처럼 말이다. 아직은 판타지일 수밖에 없어 슬프지만 사람 냄새 나는 북한의 모습과 마주할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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