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밤 Jan 24. 2022

영화 '윤희에게', 한 중년의 고독과 성장

영화 '윤희에게(2019)'를 본 후기

출처: DAUM 영화 '윤희에게'

  '너희 엄마는 사람을 좀 외롭게 하잖냐' 새봄(김소혜)이가 아빠 인호(유재명)에게 엄마 윤희(김희애)와 이혼한 이유를 묻자 인호가 답한 말이었다. 그 문장을 모든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하듯 윤희는 한 번도 '사랑'해 본적 없는 사람처럼 매마르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런 윤희에겐 젊은 시절 사랑한 쥰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수십년이 지나서도 늘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하는 그런 이름이었다.


  윤희는 동성과 사귄다는 이유로 가족의 손에 이끌려 정신병원에 보내져야 했다. 가족들은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라며 화를 냈고 혹여 이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새어나갈까봐 쉬쉬하기 바빴다. 결국 윤희는 스스로 쥰의 손을 놓았다. 오빠가 소개해준 남자와 급하게 결혼했고, 딸 새봄을 낳았다. 남편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어린 새봄은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10대가 된 새봄이 윤희에게 말하길 "엄마가 더 외로워 보여서. 엄마는 혼자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엄마를 따라 왔단다.


  새봄이에게는 한살 많은 남자친구가 있다. 어쩌면 쥰과 윤희와의 관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것은 엄마와 딸의 삶의 비슷하면서 또 다른 것과 같겠지.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는 남자친구는 새봄이가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는 것을 붙잡지 않는다. "내 처지에 너를 어떻게 붙잡냐. 적어도 네 앞길 막지는 말아야지." 새봄의 남자친구가 툭하고 내뱉은 이 문장이 바로 쥰과 윤희의 사랑을 함축한 문장이 아니었을까. 서로를 사랑하지만 서로의 안녕과 행복을 빌며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관계. 쥰과 윤희 사이에 오고 간 수많은 편지에서 그 거리와 사랑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출처: DAUM 영화 '윤희에게'

  영화 '윤희에게'는 퀴어, 그것도 중년 여성이 퀴어로서 겪었던 '과거의 폭력', '단념', 그리고 '그럼에도 살아가기'에 대한 영화였다. 윤희가 과거를 회상하며 '그땐 그랬어'라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온전한 과거의 수용, 그리고 성장을 의미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사실 '중년의 성장'은 우리나라 미디어에선 조금 낯선 개념인 것도 같다. 중년이 성장하다니. 성장 영화와 성장 드라마는 보통 10대, 20대에 초점을 맞추곤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영화 '윤희에게'에서는 자신을 끊임없이 벌하며 생을 견뎌온(자신이 사랑하던 것을 버리고, 가족들과 자신의 보통의 , 평온한 삶을 위해 사랑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여성이 스스로를 벌하고, 비난하고, 참아오던 )  중년 퀴어여성의 성장에 과감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한발짝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가 나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이유다.


출처: DAUM 영화 '윤희에게'

  영화 후반부에 윤희는 남편의 재혼을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으로(영화 속에서 이렇게 기뻐하는 김희애의 모습이 처음 나왔을 정도였다) 축복해준다. "정말 잘됐다"며 해맑게 웃는 윤희와 그 말에 눈물을 흘리던 인호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영화 초반에 윤희는 인호가 술에 잔뜩 취한 채 집에 찾아올 때마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자신은 줄 수 없는 사랑을 원하는 인호가 버겁게 느껴졌던 걸까. 하지만 남편의 행복을 빌어주는 이 장면에서 그들이 이제 진정한 친구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던 과거의 일부를 공유했던 동반자로서 진심으로 서로의 미래를 응원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윤희가 새봄의 도움으로 쥰과 일본에서 재회한 뒤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과거를 극복해낸 편안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진심으로 원했던 것을 타의에 의해 포기했던 경험. 이것은 꼭 퀴어영화에만 한정된 주제가 아니다. 영화 '윤희에게'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20대 후반~40대까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경험한 청춘의 절망과 온전히 마주하고 현재 내 삶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모습. 이런 영화의 주제의식에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이 소중한 영화가 부디 일부 혐오주의자 사람들에게 평가 절하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아저씨', 서로의 구원자가 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