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니면 되는 서글픈 오늘

오징어게임의 정신분석학적 분석 비평문

by 예진

“나만 아니면 돼!” 라고 외치던 KBS의 한 예능이 있었다. 출연진들은 복불복 게임을 통해 벌칙의 대상자를 골랐고, 운 좋게 벌칙을 피해간 출연진은 자신만 아니면 된다며 기쁨에 소리쳤다. 어쩐지 나는 오징어 게임을 보고 있자 하니 저 말이 생각났다. 혹자는 세상의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타심이 사라지는 현대 사회가 나는 어쩐지 서글퍼졌다.


인간의 욕구와 사회적 요구 사이의 간극을 욕망이라고 한다. 인간의 욕구는 충족될 수 없으며 그로 인한 결핍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작중 오일남 캐릭터를 보면, 그는 사람의 목숨을 건 게임을 개최할 만큼, 또 계속해서 그 게임을 유지해올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재력을 가진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삶을 살아갈 때에도 ‘돈만 있었더라면…’, ‘ㅇㅇ 기업 회장 재산을 내가 갖고 있었더라면…’ 과 같은 환상을 갖고 산다. 작중 게임의 참가자들 또한 456억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회생시키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재력을 가진 오일남 역시 돈을 가졌다고 해서 행복까지 갖고 있지는 않다. 그의 인생은 “재미”가 없었다. 어쩌면 그가 일평생 돈을 모아오며 돈 자체가 재미라고 느꼈을 것이지만, 결국 인생의 마지막에서 되돌아본 자신의 삶은 재미가 없던 삶이다. 그가 게임에 참가하여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며 사람의 본성을 극한의 상황에서 확인하고 인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는 것. 그에게는 그것이 진정한 “재미”였을 것이다.


작중 게임을 보면 오일남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재미에 진심인지 확인할 수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다른 모두가 인간의 죽음에 공포를 느낄 때에 유일하게 그는 어린 아이 같은 해맑음으로 게임에 임한다. ‘줄다리기’에서는 오로지 자신의 팀이 이겨야 자신 또한 살 수 있기에 긴 호흡의 대사로 줄다리기 필승법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구슬치기’에서는 구석에 있던 자신에게 손 내밀어 준 성기훈의 이타적인 마음을 확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일남은 인간의 이타성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에게 다가와준 성기훈으로 하여금 이타성을 가진 인물조차도 끝내 이기심에 굴복하고 만다는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다시 한번 실험하고 확인한다.


또한 오일남이라는 캐릭터가 재미라는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기심”으로 인해 수많은 참가자가 희생당한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오직 오일남의 재미를 위한 게임 쇼, 그 이기심에 몇 년 간 오징어 게임이 개최되었고, 심지어 그가 죽은 이후에도 게임은 진행된다. 또 다른 이의 이기심이 오일남의 자리를 꿰찬 것이 아닐까. 어쩐지 오징어 게임이 “나(=주최자)만 (죽는 것이) 아니면 돼”라고 외치는 것 같다. 비단 오일남 캐릭터의 이기심만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욕망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게임의 참가자들 또한 자신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심을 보인다. 게임내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는 결국 자기 자신만이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다. 이타적인 모습을 보였던 성기훈 역시 끝내 오일남을 상대로 거짓말을 해 구슬을 얻어내며 게임에서 이긴다. 결국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수많은 재난 영화 속에서 자신만 살겠다는 이기심을 가진 인물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모든 희망이 좌절된 그 속에서 이타심을 비롯한 인간의 가치를 실현할 때에 비로소 인류는 해결책을 찾고 빛으로 나아가게 된다. 오늘날 현대 사회도 인간의 가치를 다시금 떠올려야 할 때가 아닌가. 좀비, 자연 재해, 초자연적 재난 등 가시적인 재난만 없을 뿐이지 우리 사회도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 등에 사로잡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인간은 선을 택하고 따를 수 있는 주체라고 생각한다. 욕망에 휘둘리는 삶이 아닌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삶을 이끄는 우리가, 우리 사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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