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바라본 로이스 타이슨의 리뷰의 리뷰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의 전례 없는 경제적, 문화적 호황기에서 개츠비라는 한 인물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미국이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타락하고 마는 개인에게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미국의 자본주의 성공은 개인에게 투입되어 과거를 바꿈으로써 성공의 기쁨을 맛보게 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성의 결여는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지던 풍토를 개츠비에게 이입한 듯 보인다.
타이슨의 마르크스주의적 비평은 자본주의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보여주고 있는 개츠비와 인물들을 통해 그 비판이 타당하게 보인다. 개츠비는 부의 축적을 위해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데이지는 35만 달러의 진주 목걸이와 사랑을 교환한다. 개츠비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데이지를 갈구하지만, 그 역시 부도덕한 방법으로 번 돈을 통해 데이지(데이지가 갖고 있는 사회적 위치 포함)를 구매하려는 태도임을 엿볼 수 있다. 심지어 톰은 데이지의 죄를 숨기기 위해 아내를 잃은 윌슨에게 총을 건네주며 개츠비의 이름을 알려준다. 이는 톰이 윌슨에게 갖고 있던 불편한 감정을 개츠비와 교환하는 부도덕한 지배계층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소설이 전체적으로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기보다 화려한 파티의 모습, 근사한 저택의 모습, 그들이 입고 있는 의복과 자동차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를 통해 소설은 “내가 가진 것이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 준다.” 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타이슨의 마르크스주의적 비평이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이슨의 비평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만으로 이 소설을 모두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 소설을 읽을 수 있는데, 당시 미국은 유럽에서 이주한 유럽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유럽에 비해 경제문화적으로 뒤쳐지고 있던 상황을 1920년대에 자본주의로 뒤엎은 것이었다. 유럽에 대한 열등 의식이 남아있던 상태에서 미국의 호황기는 열등감을 없앨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유럽의 계급 의식이 여전히 남아있던 상태였고 이는 동부의 뿌리 깊은 가문과 중서부의 알량한 가문의 비교로 이어져 당시 미국인들의 의식에서 또 다른 계층 의식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위대한 개츠비에서 미국으로 표현되는 개츠비, 유럽으로 표현되는 톰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보다 근원적인 문제였던 유럽과 미국의 관계, 유럽의 계급구조까지 비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소설은 오히려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위로가 되는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체제 속의 투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개츠비처럼 투쟁하며 살고 있다. 소설의 마무리에 있어서 개츠비는 처절하고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지만, 이는 그가 부도덕한 삶을 살아왔기에 어쩌면 작가가 응당 당연한 대가를 제공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자본주의의 실패로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도덕과 윤리를 배우며 최선의 형태로 각자 투쟁을 다하고 있다. 소설 속 닉 또한 자신이 진정 바랐던 작가라는 꿈을 포기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채권 브로커로 살아가고 있다. 닉에게 있어 개츠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도덕한 방법일지라도 이미 성공한 사람으로 보여졌고, 불안하고 비극적인 삶 속에서 개츠비는 희망에 도전하는 “위대한”사람으로 보여졌다.
이야기 중간, 개츠비가 데이지를 만나고 싶다는 부탁을 들어주었을 때에도 닉은 개츠비의 선의의 대가를 거절했다. 이 대목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도 각자가 다른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으며, 그들이 살아온 궤적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 대목에서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인간의 정신은 사회적 의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닉에게 있어서 개츠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하나의 빛이 되어준 것이 아닐까.
비평문은 자본주의의 고발과 비판을 쏟아내지만, 그러한 비평문 또한 삶의 방향성이나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소설이 자본주의의 이면을 다루지만 그 안에서 투쟁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닉의 시선을 통한 희망과 위로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닉이 개츠비를 바라보았던 시선 그대로 우리가 소설을 통해 낙관적이고 희망에 찬 미래를 꿈꾸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개츠비를 통해 보여주는 인간의 꿈과 희망에 대한 갈망을 자본주의로 무기삼아 비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꿈을 꾼다는 것은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것이고, 이는 미래를 만들어갈 능력이 인간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꿈을 꾼다는 것이 인간의 주체성을 의미하는데, 이 비평은 자본주의를 도구 삼아 꿈을 실현해가는 인간의 주체성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