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 따라 지나는 길 위에서
소나무와 오동나무가 가득한 곳에 다녀왔다. 모처럼 쉬는 날, 새벽에 잠시 깨어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이내 다시 잠을 청했다.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휴가 첫 날을 게으르게 보내고 싶은 욕심에 아침 요가도 시원하게 빼먹었다. 해는 열심히 하늘 끝까지 올라갔지만 나는 멍하니 누운 채 밀려오는 무기력함에 자신을 허락했다. 젊은 딸의 무기력함이 안쓰러웠던 나의 부모님은 나를 일으켰고 자연이 가득한 예쁜 카페를 찾아가자고 유혹했다.
차로 30분 정도 갔을까. 소나무와 오동나무가 가득한 송추에 다다랐다. 익숙했던 동네 풍경을 지나, 일요일이면 갔던(지금은 가지 못한다) 교회를 지나 점점 위로 향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뻗어있던 네모난 건물 풍경에서 서서히 촌스러운 간판이 달린 낮은 건물 풍경으로 바뀌었다. 빼곡히 즐비한 건물들이 띄엄띄엄 늘어서더니 어느 순간 한참을 지나 외로이 서있었다. 나무라고 해봤자 가로수에 심어진 관상용 나무가 전부였지만 한 그루, 두 그루 합쳐져 푸른 융단이 하늘 중간에 능선을 이뤘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던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소나무와 이름 모를 푸른 나무들이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겼다. 언제부터였을까. 자연을 보러 굳이 시간을 내는 어른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나무와 풀 정도는 동네에 얼마든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내가 굳이 그 시간을 내서 자연으로 향하고 있다. 푸른 녹색이 주는 설렘과 편안함 그 사이에 나를 흠뻑 빠뜨리고 싶다.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그 푸르름을 한껏 느꼈고 아무 생각 없이 능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힘이 되고 치유가 된다. 내 경우, 육체적으로 힘이 들면 아빠가 생각나고 정신적으로 힘이 들면 엄마가 생각난다. 두 분이 들으시면 다소 서운하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외동으로 자랐지만 응석 부리기도 싫었고 나의 힘듦을 부모님께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한창 사춘기를 지날 때엔 애교조차 부리지 않았다. 지금은 애교도 늘고 감정 표현도 훨씬 많이 하게 됐다. 그렇다고 나의 고민이나 힘듦을 바로 부모님께 전해드리지는 않는다. 나로 인해 밤잠 못 이루며 어쩌면 나보다 더한 걱정과 염려를 하실 것이 분명하다. 어디까지나 자식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다. 어려운 일이 있고 한참 후에 웃으며 그 일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부모님께 전해드리곤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날 때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이 들 때 홀로 부모님을 떠올린다. 그 자체만으로 나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
쌉싸름한 커피와 달디 단 빵 한 입을 먹는다. 넓고 큰 대형 카페는 처음이라(부모님의 경우에) 이곳저곳을 눈에 담기 바쁘시다. 다른 여느 가족들처럼 함께 사진을 찍는다. 내 사진첩에 들어있는 우스꽝스러운 가족의 찰나를 함께 나눈다.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나니 오전 내내 나를 사로 잡고 있던 무기력함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외출을 한 시간은 불과 2시간~3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 집에서 고작 30분이지만 그 수고로움과 귀찮음을 이겨내니 가족의 추억이 한 페이지 만들어졌다.
카페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새파란 산이 보인다. 아직은 날이 더워 등산은 엄두도 못낸다. 뜨거운 여름이 한 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 빨간 단풍이 가득할 산을 생각해본다. 토요일 아침 가족과 함께 선선한 바람을 손끝으로 느끼며 느릿하게 걷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가 함께 보내는 순간, 그 찰나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힘들 수밖에 없는 인생을 그 찰나의 행복한 기억으로 견디고 싶다. 나의 가족, 나의 안식처, 나의 휴식처. 언젠가 오늘을 생각하며 눈물과 웃음 지을 그날을 위해 이렇게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