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시각 기호의 향연
우연히 지나가다 오징어 게임을 홍보하는 세트와 돼지 저금통을 마주친 적이 있다. 이태원 역을 가득 채운 형형 색색의 세트와 건물 위 커다란 저금통. 글은 기대가 컸던 오징어 게임을 기호학적 관점으로 바라보았고, 들어가기에 앞서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훌륭한 시각적 기호의 향연”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립의 향연
우선 가장 크게 눈에 띄는 부분은 각 요소의 이항대립이다. 게임의 참여자와 게임의 주최자, 경제적 약자와 강자, 붉은 옷과 녹색 옷, 저금통이 위치한 상단과 참여자가 위치한 하단, 모든 것이 뻥 뚫린 참여자의 공간과 꽉 막힌 감시자의 방 등 드라마 속 모든 요소가 대립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 대립쌍에서 벗어나게 되면 어김없이 제외된다. 예를 들어 형사 황준호는 운영진도, 참여진도 아니다. 결국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게임 참여자도 죽음을 통해서만 대립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조다.
상징의 향연
다음으로 드라마 속의 미장센들이 자본주의의 빈과 부를 효과적으로 대표했음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프레임의 상단에 미장센이 위치한 경우 신적 존재, 열망하는 존재로 상징된다. 반대로 프레임의 하단에 미장센이 위치한 경우 굴종하는 존재, 나약하고 취약한 존재로 상징된다. 이를 영상에 대입하여 보았을 때, 상단에 위치한 저금통은 신처럼 하단의 참가자들을 지배하고, 그들이 열망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자본주의와 사람
오징어 게임을 기호학적으로 바라봄에 있어서 깊은 사회적 의미를 담고 싶지 않았다. 깊이 바라보면 더 심오한 주제가 나오겠지만 오징어게임을 처음 시청했을 때 단순히 “킬링 타임용”으로 느껴 졌기에 처음의 감정만 담고 싶었다.
게임 참가자들이 모인 이유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닌 “돈” 때문임을 잊지 않도록 천장에 투명한 저금통을 설치한 것 또한 좋은 연출로 느껴졌다. 자칫 데스게임이라는 형식에 매몰될 수 있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목숨 값이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면서 사람이 죽었다는 죄의식 대신 저 돈을 가질 수 있다는 어긋난 희망이 자리 잡는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 또한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사실 돈이란 종잇장에 불과하지만 인간이 부여하는 가치와 의미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람의 목숨 값을 1억으로 설정한 것마저 인간성 대신 자본주의적 관념이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1억에 술렁이는 참가자들. 사실 참가자와 주최측 어느 쪽도 호감이 가지 않지만 성기훈이 극 후반으로 갈수록 돈 대신 사람의 목숨을 선택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응원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를 완전한 이타주의적 인물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인간은 성장하고 달라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의 태도 변화가 어쩌면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까. 오징어 게임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추악한 모습 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