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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천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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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의강 Dec 06. 2023

북한산 인수봉, 壁을 넘어서

산천심론


금지된  뒤엔 무엇이 있을까?


100대 명산 완등을 마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암벽학교에 도전했습니다.


녹음이 짙어가던 초여름이었습니다.



북한산 인수봉


<인트로>


고교 산우회에 8주간의 암벽교육 공고가 떴습니다.

암벽러 저변확대와 재능기부 차원에서 마련한 행사라 하였습니다.


평소 관심이 있던 차라 두려움도 있었지만, 고민 끝에 주변에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등록하였습니다.


늘 그랬듯이 빠른 결정이었습니다.



<교육 1, 2 이론>


안전 등반에 대한 기본 지식과 시스템, 매듭법 등을 수십 개의 동영상 시청으로 대신하였습니다.


나이에 대한 염려와 달리 8명의 수강생 중 5명이 나 보다 선배였습니다.


밧줄은 잡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만약의 사태와 내릴 때만 의지하는 생명줄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교욱 3 실습, 장비착용 및 실내 암장>


3주 차 우이동 산악문화 허브의 실내교육, 

쟁쟁한 경력의 내외부 강사 소개와 암벽화, 하네스, 확보줄, 하강기, 헬멧, 자일 등 기본 장비 착용법과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개인 장비들은 모두 대여를 해주었습니다.


스킨 스쿠바 다이빙을 수십 년 하면서 생명과 직결된 장비에 대한 소중함에 대해서는 엄히 배우고 가르치며 익힌지라 조심스레 다루면서 장비에 대한 믿음을 키워갔습니다.


비가 많이 와 실내암장에서 초보적이고 기본적인 기술과 실습을 통해 중력을 거스르는 오름짓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본 장비


<교육 4 실습, 인수봉 릿지>


4, 5주 차는 예정되었던 불암산 등반이 우천으로 휴강되어, 다음 날 북한산 인수봉에서 슬랩(매끄러우며 넓은 바위)에서 릿지(가파른 바위나 능선을 오르는 등반) 실습으로 하루 만에 두 주분을 소화했습니다.


북한산 도선사 입구에서 만나 하루재 지나 험한 너덜길 헤치고 인수봉 대슬랩 하단에 닿았습니다.


암벽 바로 밑에 서니 깎아지른 암릉이 아스라이 느껴지며 상당한 위압감을 주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루트로 많은 등반객들이 잿빛 암벽에 다닥다닥 붙어있고, 먼저 와있는 대학생들의 단체 교육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등산은 우리가 흔히 하는 ‘걸어서 산을 오르는 행위’를 뜻하고, 등반은 암벽이나 암릉, 7,000m 이상급 고봉을 오를 때 사용한답니다.(월간 )


인수봉의 자일러들과 등반 코스


시스템 등반은 우선 실력 있는 선등자가 로프를 달고 중간 볼트에 줄을 걸면서 오르고  확보장소에 후등자를 위한 준비를 마치면 다음 사람들이 하네스에 줄을 연결하고 선등자가 갔던 길을 따라 오르는 구조입니다.


암벽화를 믿고 오르라 하는데, 첨이라 그런지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관악산 바위들을 재밌게 올랐던 경험과 유튜브 영상을 상기하며 두려움을 떨쳐내면서 난생처음 암벽등반과 자일 하강의 짜릿함을 맛보았습니다.


두 번째 실습에서는 '오아시스'라 불리는 거대 암벽 중간에 나무 몇 그루 자라 그늘을 이루는 안부까지 릿지로 낑낑대며 올라, 위아래로 오르고 내리는 멋진 자일러들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바라보았습니다.


첫 실습교육 중 옆 암벽에서 쿵 소리가 나서 확인해 보니 선등자 추락사고였고 곧바로 구조 헬기가 날아와 어수선함과 공포심을 더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라는 말을 듣고 견딜만했습니다.



오아시스와 구조헬기


<교육 5 실습, 인수봉 크랙>


크로니 크랙,

북한산 인수봉의 커다란 바위틈을 비집고 오르는 코스입니다.


선등 대장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오르는데, 막상 따라 하려니 바위틈에 발이 끼고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도 몇 번 해보았다고 한결 수월한 마음으로 올랐고, 생명줄인 자일에 편히 몸을 맡기며 확보에 필요한 주요 스킬 몇 가지도 습득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고 짜릿함이 즐거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인수봉 대 크랩과 확보줄



<교육 6 실습, 북한산 숨은벽>


숨은벽 자체가 워낙 유명하고 멋진 코스이자 짜릿한 등산로인데, 엄두도 못 냈던 보이지 않던 그 너머를 오른다는 설렘과 긴장감이 좋았습니다. 


하루재 넘어 이면 등산로를 돌아 숨은벽 하단에 도착했습니다.


40m 거대 슬립의 1 피치, 상어지느러미바위가 있는 가파른 슬랩과 크랙의 2 피치, 고래등바위를 오르는 3 피치와 아찔한 바위틈을 오르내려 마지막 4 피치를 올라 엄지바위를 끝으로 숨은벽 정상인 768m 봉에 닿았습니다.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 숨겨진 벽을 오르며 보지 못했던 비경들을 만나고 가슴 쫄깃쫄깃한 암릉들을 지나며 북한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힘든 만큼 멋진 성취감을 주는 등반이었습니다.



숨은벽 릿지 등반


<교육 7 북한산 인수봉>


우이역에서 바라보는 인수봉이 구름에 가려있습니다.


'할 수 있을까?',


마지막 인수봉 졸업등반을 앞두고 스멀대는 걱정을 누르며 도선사 하루재 지나 인수봉 옆 거친 바위길을 헤집고 올랐습니다.


발길이 끝나는 곳에 기술과 장비가 필요합니다.


좁은 바위틈을 아슬아슬하게 지나 그동안 배웠던 릿지, 크랙 기술을 총동원하여 인수봉 거친 뒷면을 올랐습니다.


생명줄에 연결되기는 했지만 한발한발이 생과 사를 가른다는 짜릿함에 몸을 떨며 얼떨결에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대한민국 몇 %만이 와본 곳이란 말을 들으며 마지막 바위 위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더욱 짜릿한 것은 깎아지른 수백 m 암릉을 내려오는 마지막 수직 하강이었습니다. 


밧줄 하나에 몸을 맡기고 마찰열로 손에선 불이 나는 듯했지만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맛에 자일을 하나?'



인수봉 졸업등반


<에필로그>


벽을 넘어,

가지 않은 길에 새로운 세계가 있었습니다.


그 짜릿함이 자주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준 등반대장님과 강사님들,

함께 오른 선후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인수봉 위 바위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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