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을 보고
*이 글은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이 글에 대한 해석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알려드립니다.
영화 <기생충>의 영어 제목은 Parasite이다. 굳이 해석하면 1. 기생 동물(식물) 2. 기생충 같은 인간을 뜻한다. 그냥 단순한 worm과 같은 단어를 선택하지 않았다. Parasite의 유의어들을 찾아보아도 sponger(식객, 기식자), leech(착취자, 기생충), hanger-on(식객, 매달려 사는 부하), Bloodsucker(흡혈귀, 고리대금업자, 남의 고혈을 빨아먹는 사람) 등이 나온다.
그렇다면 기생(寄生)의 뜻은 어떨까? 네이버에서 찾아보면 1.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이 함께 생활하며, 한쪽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이 해를 입고 있는 일. 또는 그런 생활 형태 2. 스스로 생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 생활함 '더부살이'로 순화한다고 적혀있다.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사는 것인지 알았지만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달라지는구나 싶다. 한쪽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이 해를 입는 게 딱 보기에도 명확하게 보이지만 과연 그게 사실 일까도 궁금했다. <기생충> 이 영화, 처음 개봉할 당시에는 포스트를 보고 스릴러인가 했고, 막상 영화를 볼 때는 가족 사기단 영화인가 했는데 마지막엔 그냥 침묵하게 되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권투계의 절대자 타이슨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이는 참 많은 뜻을 가진다. 누구나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계획"이라는 녀석이 참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우의 계획은 분명 완벽했다.
기우(최우식)는 친구 민혁(박서준)의 제안을 받아서 다혜(정지소)의 과외를 진행하게 된다. 대학을 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수능만 4번(?) 본 기우는 수능 과외로는 충분했다. 그는 여동생 기정(박소담)의 편집 능력을 이용해서 위조 서류를 만들었고, 첫 수업에서 기세를 빼앗아 오면서 다혜와 안주인 연교(조여정)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미술과외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말에 기우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고, 여동생 기정을 해외에서 미술 공부를 했던 선생님이라 거짓말을 쳐서 면접을 보게 만든다.
거기서부터 기우의 계획은 시작되었다. 기정은 기우의 여동생임을 증명하듯이 자연스럽게 해외에서 공부한 선생님의 역할에 몰입했고, 집에서 백수로 있는 아버지를 끌어 들일 판을 짠다. 모든 판은 자연스럽고 천천히 흘러갔다. 아다리가 딱딱 맞듯 동익(이선균)의 운전기사였던 윤모 군은 실직을 당하고 자연스럽게 기택(송강호)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제 가정부 문광(이정은)만 내보내고 엄마인 충숙(장혜진)만 가정부로 들인다면 기택의 전 가족은 동익네 가족에 고용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문광을 내보내면서 그들은 완벽한 계획을 마무리지었다. 한 가족이 한 가족에게 완벽한 기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우의 계획은 딱 거기까지였다. 폭풍우가 내리는 그날 문광이 상처투성인 얼굴로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부터 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한다. 기생충에서 기우는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한다. 기우라는 뜻을 찾으면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라는 뜻이 있다. 기우는 민혁이 과외선생님 제안을 할 때부터 걱정이 많았고, 그 후 앞날에 대한 쓸데없는 계획들을 세운다. 마지막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나서도 그는 아버지를 다시 만날 계획을 세운다. 기우는 자신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표본이다. 그러나 올라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획은 언젠가 실현되지만, 자주 혹은 종종 무너지기 때문에. 뼈아픈 현실이다.
기택은 아무런 계획이 없다.
송강호가 연기한 기택은 아무런 계획이 없다. 영화 시작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을 때 충숙은 기택의 엉덩이를 차면서 말한다. "다음 계획은 뭐냐?" 거기서 기택은 아무런 말이 없다.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내리는 날 비에 젖은 생쥐꼴로 집으로 돌아온 기택 가족은 홍수가 나서 잠겨버린 집을 뒤로하고 체육관에 몸을 피한다. 잠들기 전 기정이 기택에게 물었다. "다음 계획이 뭐냐고" 기택은 "다 계획이 있다."라고 하지만 그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계획을 세우면 결국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무계획이 가장 완벽한 계획이라 생각했다. 여기 체육관에 피난민처럼 모인 사람들도 계획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라는 말이 뼈를 때렸다.
내가 본 기택은 거기에 머무른 사람이다. 즉, 자신의 가난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기택은 알았을지도 모른다. 발버둥 쳐도 윗 세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영화를 봐도 기우와 기정이 동익의 집에 갈 때는 그들이 아래에서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기택과 충숙은 아니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 낮은 위치로 면접을 보았고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기택은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무계획이 계획이다.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흘러가기 때문에 그는 폭풍우에 아래로 흘러가는 빗물처럼 그저 흘러갈 뿐이다.
그런 그에게 딱 한 번 계획을 세우는 순간이 온다. 동익의 집에서 동익을 죽인 후, 기택은 도망가다가 문득 깨닫는다. 생각을 한다. 이대로 도망가면 어딘가에서 잡힌다. 그는 순간적으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 계획은 지금보다 더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다. 거기서도 그는 만족을 한다. 지하에서 햇빛을 보지 못해도, 남의 집 음식을 훔쳐먹으면서 기생해도 화가 나기보다는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선을 지키는 남자 동익
이선균이 연기한 동익은 전형적인 상류층이다. 대저택에 가정부와 기사를 두었고, 여러 매체에도 출현한 사람이다. 그는 '선'을 강조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역할 이상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연교(조여정)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내는 아이를 가르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연교는 자신이 아이를 잘 케어하지 못했다는 것을 동익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동익은 상대가 선을 지키면 어떻든 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일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가정부는 가정부의 역할에, 운전기사는 운전기사의 역할에. 거기서 벗어나면 그는 화가 난다. 즉, 동익은 기득권층이다. 그는 자신의 영역으로 누군가를 들여보낼 생각이 없다. 그렇기에 "사모님을 사랑하시죠?"란 기택의 질문은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 질문은 동익에겐 선을 넘는 행위였다.
그리고 동익의 아들 다송의 생일에 동익과 기택은 인디언 모자를 쓰고 숨어있는다. 다송의 생일을 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였다. 둘은 쪼그려서 대화를 나누다가 또다시 기택은 같은 질문을 한다. "그래도 사모님을 사랑하시니까" 그 말에 동익은 정확하게 선을 긋는다. "지금도 근무의 연장"이라는 말로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긋는다. 기득권층인 동익은 하층에 있는 기택과 어울리는 '척'을 할 뿐, 절대로 같이 어울릴 생각이 없다. 어떤 사회가 생각나서 조금은 씁쓸했다.
#계단이 있는 것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영화는 유독 계단을 많이 보여주었다. 사회적 계층의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에서 계단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계단을 앵글로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인간이어도 계급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1층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평범한 서민은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
2층에 사는 동익 가족, 반지하에 사는 기택의 가족, 그리고 지하에 사는 문광의 남편. 애쓰는 것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지 위쪽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상류층이 삶을 만끽하지만, 결코 그들이 될 수 없다. 폭풍우가 내리는 날 문광의 가족은 지하실로 다시 내려가서 감금되었고, 기택의 가족은 폭풍우를 맞으면서 아래로 아래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그들이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참 멀었다. 마치 동익네 가족의 삶이 기택네 가족의 삶과 굉장히 먼 것처럼... 그들은 아래로 흘러가는 빗물처럼 하염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마지막 기우는 아버지 기택을 위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마지막 계획을 말한다. 아버지는 그냥 계단을 올라오시면 됩니다. 저희는 햇빛을 쐬고 있겠습니다.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는 것. 그들이 바라는 삶일지도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삶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 위에 사는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겠다는 고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영화 속 흔적들
@다송의 자화상
다송은 1학년 때에 집에서 귀신을 보고 경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충격을 그림으로 승화했는데, 연교는 그 그림이 자화상이라 말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생각을 해보면, 그 그림은 자화상이 아니고 다송이가 본 문광의 남편을 그린 것이었다. 다송은 집에 귀신 혹은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음을 그림을 통해서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산수경석
민혁은 기우의 집에 산수경석을 선물한다. 재물이 들어오는 돌이라고 선물을 하고 기우는 "이건 굉장히 상징적인 것"이라 말한다. 상징적인 것. 그렇다. 산수경석은 상징적인 것이다. 산수경석을 보통 수석이라고 부르는데 수석은 "강이나 바닷가의 돌밭 또는 산중에서 기이하게 생긴 돌을 수집하여 그 묘취를 즐겨 사랑하는 취미"를 뜻한다. 민혁은 취미와 상징적인 의미로 산수경석을 선물한다. 기득권층의 일부인 민혁에게 산수경석은 눈으로 즐기는 돌이다.
하지만, 같은 돌이어도 쓰임새가 다르다. 기우에게 산수경석은 눈으로 즐기는 돌이 아니었다. 반지하의 집에서 밥을 먹을 때 기우와 가족들은 노상방뇨를 하는 주정뱅이를 보게 된다. 그때 기우는 산수경석을 들고나가려고 했다. 노상 방뇨하는 사람을 내쫓기 위해서 왜 그는 산수경석을 들고나갔을까? 기우에게 산수경석은 그저 돌이었다. 과거 석기시대 돌로 사냥을 했듯이, 기우는 돌을 이용해서 위협을 내쫓으려고 했다. 그리고 돌을 이용해서 문광 가족을 어떻게 하려 했다. 문광의 남편 역시 산수경석을 이용해서 기우의 머리를 내려친다.
여기서 영화의 지독한 계층 나누기가 나타난다. 어떤 계층이냐에 따라서 같은 물건도 사용도가 다르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산수경석을 취미로 바라보기 위해서 사용하지만, 그건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이야기이다. 여유가 없는 자들에겐 취미를 즐길 시간이 없다. 그들에게 돌은 돌 이상의 가치가 없다.
@영화 속 대비 장면들
영화는 불편한 진실을 자주 보여주었다. 명백히 보이는 계층 간의 구분선들이 유독 불편한 것은 영화를 보는 내가 기득권층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 텐트
폭우가 내리는 날 다송은 인디언 텐트를 치고 잔디밭에서 잠이 든다. 동익은 비에 젖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연교는 미제라서 튼튼하다고 말하면서 동익의 걱정을 덜어준다. 그러나 폭우가 내리는 그날 반지하에 사는 기택의 집은 역류하는 물들로 인해서 난리가 났다. 미제 텐트보다 못한 기택의 반지하집. 송곳처럼 찌르는 불편한 진실이 보였다.
2. 옷
어느 장소에 가면 우리는 장소에 맞는 옷을 입게 된다. 동익의 집에서 모두 좋은 옷을 입고 있다. 연교는 격식을 차리는 옷을 입고 있으며, 그 안에서 근무(?)하는 기택의 가족들 모두 자신들의 옷 중 가장 좋아 보이는 옷을 입고 있다. 동익의 집은 격식을 차리는 옷을 입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곳이다. 그런데 기택의 집에 모인 이들은 어떤가. 그들은 편한 옷을 입고 편하게 행동한다. 행동이 변하게 된다. 좀 더 격식이 없어지고 선이 없다. 뭐랄까 그렇게 대비되는 장면에서 나는 말 못 할 불편함을 느꼈다.
3. 날씨
폭우가 내린 후 연교는 전화를 하면서 말한다. "비가 내려서 미세먼지도 하나 없이 좋다." 그들에게 폭우는 천재지변이 아니다. 비가 내려서 집에 떠내려간다거나 집안에 물이 넘친다거나 하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폭우는 재앙이다. 너무나 맑은 하늘에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물이 넘쳐서 집을 떠나 체육관에 있는 사람들은 아우성이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그 차이를. 안다. 그게 더 불편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해서.
4. 부자여서 착해
기택의 가족들이 짬뽕 술을 먹을 때 연교가 착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충숙 역시 동의하면서 이 말을 했다. "부자여서 착해" "나도 부자면 착해" 그 말 잠깐 지나간 그 말이 참... 쓰다.
5. 겉면을 보고 판단하는
기우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냥 계속 웃었다고 말했다. 자기는 그냥 웃었다고 그러면서 나온 대사 "경찰 같지 않은 경찰과 의사 같지 않은 의사." 경찰 같은 경찰은 어떻게 생겼고, 의사 같은 의사는 어떻게 생겼을까? 다혜에게 "나 잘 어울려?"라고 물었던 기우는 아이러니하게도 반대의 상황에서 다른 이를 평가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에 약간의 선입견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의사는 깔끔하게 생겨야 하고, 경찰은 뭔가 단정하게 생겨야 하는 것일까? 봉 감독님은 왜 꼭 마지막에 그런 이미지를 심어두어서 사회가 아무리 바뀌려 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일까?
@영화 속 옥에 티
문득 발견한 옥에 티가 하나 있다. 알아차린 사람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다송의 생일날 사달이 난 그날 다혜는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해"라고 말한 기우를 찾는다. 그리고 피 흘린 기우를 업고 난리가 난 현장을 빠져나온다.
고등학생이 실신한 성인 남자를 혼자서 업는 것이 첫 번째 옥에 티요. 두 번째는 기우를 발견했을 때 분명 문이 열려있는 지하실을 다혜가 봤을 텐데 그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너무나 완벽하게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몰입하게 만든 봉 감독님도 그 부분을 놓친 것일까? 조금 궁금했다.
#사람은 향기를 남기고
영화를 보고 나오면 유독 내 몸에서 나오는 냄새에 민감해진다. 다송은 기택의 가족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때부터 영화의 장르가 조금은 변하는 것 같았다. 기택 가족은 집에 모여서 각각 빨래를 따로 해야 하냐고 말했는데, 거기서 기정이 그런 냄새가 아니라 선을 긋는다. 반지하 냄새. 그녀는 반지하 냄새라고 말한다. 낙인처럼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향기인 것이다.
동익은 기택에 대한 험담을 하면서 말한다. "몰라 그 퀴퀴하고 눅눅한 냄새, 가끔 지하철 타면 느껴지는 냄새"
지하철 역시 반지하이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향수로 겉을 치장해도 속 깊게 베인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냄새를 맡고 사느냐가 우리의 계층을 나누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동안 영화를 보고 나서 사라진 생각도 있고, 새롭게 생겨난 생각도 있지만 일주일 내내 내 몸에 냄새에 유독 예민해졌다. 내 몸에 나는 냄새는 무엇일까. 계단을 올라가서 맡는 냄새일까? 아니면 햇빛도 잘 들지 않는 눅눅한 냄새일까. 다우니는 아무 소용이 없을까? 뭐 그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이것저것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너무 길어진다. #지하보다 더 지하가 있다. 라던가 #마약 사줘 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깔끔한 상류층에 사는 동익 부부가 종종 하층을 느끼고 싶어 하는 갈증이 있다던가. #인디언과 보이스카웃을 이야기하면서 느껴지는 기분이라던가 #문광과 문광 남편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바퀴벌레에 관한 이야기라던가 그런데 이걸 다 쓰자니 논문처럼 되어버릴까 봐 그냥 담아두려고 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기정을 연기했던 박소담이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이 3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오물이 역류하는 화장실 위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 두 번째는 문광 남편에게 칼로 찔렸을 때 "식빵"하면서 담담하게 욕하는 장면. 세 번째는 기택이 피가 나는 기정의 상처를 누를 때 웃으면서 "아빠, 아파 살살 눌러"하는 장면. 가슴 깊게 꾹꾹 눌러 담는 듯한 그 연기가 너무나 인상 깊었다. 뭔가 도깨비의 김고은을 닮은 듯했고 처음 영화로 만난 배우였는데 생각보다 깊어 보이는 연기 내공이 기억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