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보고_넷플릭스 X브런치
넷플릭스 <블랙 미러>는 오래전부터 추천을 받았었다. 되게 철학적이며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주고, 흡입력이 어마어마하다는 평이었다. 내겐 예전부터 청개구리 같은 습관이 하나 있는데, 남들이 다 좋다고 하면 괜스레 하기 싫어지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다 보니 <왕자의 게임>도 엄청 밀려있고, 블랙 미러 역시 시즌 5가 될 때까지 보질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블랙 미러를 보면서 느낀 게 있다.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삶에 흥미를 잃은 자
대니와 칼은 오랜 친구다. 젊은 시절 돈이 없던 때부터 둘은 함께 방을 나눠 쓰면서 우정을 다졌다. 같이 클럽에서 놀고 대니는 여자 친구와 사랑을 나눈 후에 칼과 함께 새벽까지 게임을 즐겼다. 대니는 게임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자유분방한 칼의 꼬임에 넘어갔고, 그들은 게임을 같이 즐기며 우정을 나눴다. 그 게임이 바로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였다. 과거 오락실에서 즐기던 "스트리트 파이트" 같은 류의 대전 게임이라 생각하면 된다. 아마 분명 스트리트 파이트에서 영감을 가져왔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하튼 오래전 2D의 대전 게임으로 청춘을 보낸 그들은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대니'는 자신의 생일파티에 모인 친구들을 맞이하고, 파티를 지켜본다. 즐긴다보다는 지켜본다는 쪽이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어딘가 지겨워 보인다. 표정에 너무도 티 나게 무료함이 스쳐간다. 무릎을 심하게 다친 후 대니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갔다. 그런 그에게 뒤늦게 칼이 나타났다. 칼은 선물이라면서 VR버전으로 나온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선물해주었다. 밤에 한번 해보라고, 여긴 신세계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접속한 게임 속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엇이 진정한 사랑일까?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고, 그 후부터는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우정과 의리로 만나게 되는 거라고. 사람들은 안정적인 삶을 원하지만 대니와 테오를 보면 안정적인 삶 속에 느껴지는 지루함이 보인다. 둘은 정기적인 육체적 관계를 의무처럼 하는 느낌이었고, 대니는 어딘가 무던해 보이는 듯 자꾸 관계를 피했다. 그런 대니의 행동이 불안한 테오,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불안했다.
무료함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VR 게임에 접속한 대니는 놀라고 만다. 게임 속에 자신이 게임의 캐릭터가 되어 있었고, 거기서는 자신의 불편한 무릎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게임 캐릭터의 기술들을 사용하면서 이전에 없던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타격감도 실제로 느끼는 VR 게임은 의식만 가져와서 대니를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그. 런. 데. 여기서 부작용이 나온다. 남자 캐릭터의 대니와 여자 캐릭터의 칼, 둘은 묘한 기류를 유지하다가 그만 덜컥 키스를 해버린다. 그리고 관계를 가지게 된다. (어멋)
본질은 남자인데 보이는 현상은 여자인 칼, 대니는 자극을 즐기면서도 혼란에 빠진다. 점점 테오에게 무관심해져 가고 테오는 그럴수록 불안해한다. 결국 결혼기념일에 테오는 대니에게 말한다. 다른 여자가 생겼냐, 내가 이제는 매력적이지 않는가. 나도 다른 곳에서 인기가 많을 수 있다. 왜 날 사랑해주지 않느냐. 대니는 가상현실의 칼과 현실의 테오 중 선택을 해야 했고, 테오를 선택하고 다시 안정적인 삶을 이어갔다. 그렇게 삶이 다시 안정적이지만 무료해졌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적적해하는 대니를 위해서 테오는 칼을 초대한다. 칼은 아무렇지 않은 척 초대를 승낙하고 대니에게 다시 접속해주기를 원한다. 다시 게임에 접속한 대니는 이게 진정한 사랑일까를 확인하기 위해서 칼에게 실제로 만나자고 한다. 실제로 만나고 키스를 한 두 남자는 사랑이 아님을 깨닫는다. 가상현실은 가상일 뿐 현실이 아니었다. 그리고 둘이 투닥투닥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고, 집으로 복귀하는 길에 대니는 테오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다.
그리고 엔딩이 나온다. 결론은 상상하기 나름이다. 둘은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은 듯 보인다. 치팅데이 같은 날이 생겼고, 대니는 그 날에 VR 게임에서 칼을 만난다. 그리고 테오는 예쁘게 차려입고, 손에 낀 반지를 빼고 밖으로 나간다. 열린 결말인데 뭔가 알 것 같다.
시즌 5의 1편을 보고 느낀 것은, 아마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있을법한 일이다. 개발자들은 좀 더 현실감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된다면 우린 뇌파만으로 통각을 느끼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실제로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육체적으로 관계를 가지는 것과 가상현실에서 육체적인 관계를 나누는 것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상현실에서 보이는 사람이 여자일지, 남자일지 그리고 그 사람이 정말 여자일지 남자일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정답은 아니더라도, 대안책을 말해주는 것 같다.
블랙 미러 제작진은 이런 세상을 예측한 듯하다. 미래 사회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고, 본질에 대한 의문을 많이 던지는 것 같다.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단순히 인상 찌푸리면서 보고 지나가는 드리마가 아니다는 생각이었다. 100분 토론에 나올법한 토론 주제였다. 기술의 발전이 되면, 그래서 정말 VR로 육체적 관계를 느낄 수 있다면 우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욕망 일가 탈출구일까? 아직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는 조만간 만나게 될 사회의 이면인 것 같아서 씁쓸하다.
초반에 영상이 너무 좋았던 게 배역들의 시선에 따라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게 마치 1인칭 시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배우들의 내면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훨씬 쉽게 몰입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