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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Aug 21. 2018

비가 내리는 새벽

잠결에

지긋지긋한 여름이 말복을 기점으로 180도 고개를 돌리고 나도 이제 가을이야 하는듯 밤마다 바람이 살랑인다. 이번 여름은 참 박복한 계절이었다. 비 소식이 파병나간 애인처럼 멀리 떠나버린듯이 감감무소식이었다. 온다더라,  곧 온다더라 하는 희망찬 메세지와는 다르게 메마른 목줄기를 적셔줄 빗방울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여름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뜨거운 햇빛과 따뜻한 바람, 조금만 걸어도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이 꽤나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 어디로가?"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늘 "저는 여름에 회사가 젤 좋아요."라고 진심을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크게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여름에 좋아하는 것이 하나있다. 장마빗소리를 들으면서 잠에 자는 것, 그리고 주말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만끽하는 것. 가끔은 미친척하고 비오는날 달리러 간 적도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말로는 "아? 그래요?"라고 이야기했지만 늘 표정은 '또..또라인가..?'라고 대답을 했다. 비 오는날에 달리면 몸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느낌과 자연의 냄새, 그리고 시야를 가리는 빗줄기의 불편함등을 통해서 자연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예의삼아 "한번 해보세여~"라고 말하곤 했지만, 절대 그들이 비오는날에 달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올해는 비도 딱히 내려주지도 않아서 여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그나마 선선해지기 시작한 요즘 창문을 열고 잠이 드는데, 꿈결에 빗소리가 났다. 꿈인가 사실인가 꿈에 취해 빗소리에 취해 몽롱하게 새벽을 날아다녔다. 어릴적 시골 할머니 집에서 낮잠자다가 들었던 빗소리 같았고, 군대에서 텐트아래서 추위를 피하면서 잠이 들었던 빗소리 같았다. 일정하게 떨어지는 빗소리의 바이오리듬에 나는 과거 저 멀리 비가 내렸던 순간 순간을 떠돌아다니다가 눈을 떴다.


새벽 5시, 알람도 채울리기 전이었는데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꽤나 반가웠다. 가을에 비가 오면 금방 겨울이 온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비가 반가운 것은 아마도 조금은 메말라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런닝을 하기 위해서 맞춰놓았던 알람들을 다 끄고 조용히 누워서 빗소리를 즐겼다. 차마 출근을 해야하는 입장에서 멋모르는 철부지처럼 빗속을 달리지는 못했고, 그냥 빗소리와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의 오케스트라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햇빛만 가득한 삶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언제나 햇빛만 가득하고 따뜻하기만 할까? 햇빛이 계속되면 뜨겁고, 곧 따가워진다. 피하고 싶어지고 그렇게 싫었던 어둠이 좋아질 수도 있다. 땅에도 수분이 없으면 메말라서 갈라지듯이 삶도 물기가 없으면 메마르고 예민해진다. 삶에도 가끔 비가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정신없이 달려왔을 때 숨을 고를 수 있고, 메마른 마음에도 축축한 감성이 흘러들어온다. 늘 물기가 가득한 삶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물 없는 사람은 믿을 수 없는 것 처럼, 축축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은 멀리하는게 좋을 듯 하다.


비가 내려야 갈증이 난 식물들이 목을 축이고 새로운 새싹이 돋아나듯이, 삶에도 가끔 소나기 같은 비가 내려야 주변을 둘러보고 거친 쉼을 쉴 수가 있다. 그러니까 가끔은 비가 오면 그냥 맞아보자. 혹시나, 메마른 당신의 마음에 생명수 같은 물줄기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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