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발스텝도 재즈인가요?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 'My Real Book Vol.2' 공연 리뷰

by 유랑


나는 재즈를 이야기할 때 항상 내가 재즈를 잘 모른다는 것을 알리고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게 이번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JTO)의 공연을 보면서도 최정수 작곡가(이자 지휘)의 부연 설명이 없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정수 작곡가는 연주에 들어가기에 앞서 중간중간 연주할 곡에 관한 소개와 더불어 그 차이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고, 이것이 나에게 있어 공연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순간마다 나의 눈에 들어왔던 건 최정수 작곡가의 말에 반응하는 몇몇 관객들이었다. '아, 그 곡 좋지.' 하듯 감탄하는 탄식을 내뱉기도 하고, 최정수 작곡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는 사람들. 집에 돌아가서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 관객과 연주자의 소소한 상호작용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 나는 10인조 재즈 앙상블 JTO의 등장부터 이 공연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게 무대 위에는 기타, 피아노, 클라리넷, 플롯, 드럼으로 현장에서 직접 그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 악기부터 시작해 트럼본, 알토색소폰, 테너색소폰이라는 새로운 악기까지 다양한 악기가 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41226_165529643_01.jpg


재즈는 주로 소규모 편성으로 이루어지는 데 반면 JTO는 10인조로 비교적 대규모 편성의 앙상블이라고 한다. 최정수 작곡가는 이러한 것이 실험적 시도라고도 하였다. 대규모 편성의 어려움을 듣기 전까지 나는 오히려 눈에 띄거나 크게 들리지 않아도 절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소리가 모여있다는 감상을 하고 있었기에 조금 놀라기도 하였다. 생각해 보면 내가 접한 재즈 공연들도 대부분 소규모 편성이었다. 하지만 나의 취향은 이번 JTO의 공연에서 만난 대규모 편성 재즈에 가까웠다. 풍부하게 귀를 가득 채워주면서도 갑작스레 찾아오는 독주의 매력이 한껏 살아나는 편성 아닐까?


KakaoTalk_20241226_165529643_04.jpg


공연은 스탠다드 재즈 4곡을 시대의 순서대로 들려주는 방식이었다. 우선 1940년대의 대표적인 비밥 재즈 두 곡을 들어볼 수 있었다. 찾아본 바로 비밥 재즈는 소규모 편성과 빠른 박자, 즉흥 연주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조금 거칠고 난해한 곡의 흐름을 갖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거칠게 나아가는 비밥 재즈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였다.


특히 중간에 독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파트가 있었고, 아마 즉흥 연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지레짐작해 본다. 이 파트는 네 번째로 들었던 1960년대의 하드밥 재즈곡에서도 등장하였는데, 하드밥 장르는 비밥의 거침과 리드미컬을 함께 담은 장르다. 나는 하드밥을 들으면서 어느새 비밥과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나는 재즈를 알아가는 즐거움으로 가득해져 손가락으로 쉴 새 없이 박자를 타곤 했다.


최정수 작곡가는 위와 같은 재즈의 정석, 스탠다드 재즈를 JTO 앙상블만의 느낌으로 재해석하여 조금 더 현대적으로 편곡하였다고 한다. 이를 ‘재작곡’하였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내가 원곡을 몰랐다 보니 그 차이를 알 수 없는 게 가장 아쉬웠다. 만일 이러한 기회가 다시 한번 생긴다면 공연의 세트리스트가 있을 때 무조건 원곡을 먼저 들어보고 가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스탠다드 재즈를 들은 후에는 JTO만의 오리지널 재즈를 몇 곡 들어볼 수 있었다. 그중 두 번째 곡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을 정도로 좋았는데, 새 한 마리가 비엔나의 도시를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들었던 것 같다. 상쾌한 리듬과 그리움이 담긴 듯한 멜로디처럼 들리는 점도 흥미로웠다. 특히 오리지널 재즈에서는 스탠다드 재즈보다 확연히 보컬의 목소리가 잘 들렸다. 이러한 보컬이 대규모 재즈의 매력 한껏 살림과 동시에 내가 기존에 지녔던 재즈에 관한 생각의 폭이 넓어진 기분이라 가장 인상 깊었던 것 같다.


KakaoTalk_20241226_165529643_03.jpg


재즈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에는 항상 미묘한 진동이 있다. 나는 재즈 공연에서 항상 슬쩍슬쩍 관객들을 살펴보곤 한다. 그럼 사람들은 모두 미묘하게 다른 박자를 타고 있고 나는 그것이 꽤 즐겁다. 이번 공연에서도 나는 사람들의 리듬도 함께 구경하는 즐거움과 함께 재즈를 감상했다. 누군가는 느릿하게 큰 박자를 타고 누군가는 재빠르게 재즈의 속도를 따라갔다. 머리를 끄덕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다리나 가방, 손등을 홀로 툭툭 치기도 하는 등 온몸으로 재즈를 느끼는 그 광경은 매번 질리지 않았다.


그때 발바닥에서 누군가 발로 바닥을 툭툭 치는 진동을 느꼈다. 순간 머릿속에 ‘발스텝도 재즈일까?’하는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발스텝까지도 하나의 재즈로 완성되는 기분에 휩싸인 채 그렇게 공연장을 나와 추운 겨울의 거리를 들썩이며 걸어보았다. 이처럼 다양한 울림을 주는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의 공연을 감상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한 번쯤은 접해보길 추천한다. 여러 악기가 주는 울림과 관객들이 주는 울림을 한껏 즐기면서 말이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3379)에 기고되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가 만들어가는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