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조이 Vol.1: 집이 없어 리뷰
‘단 하나의 작품, 오직 한 명의 작가, 오로지 팬만을 위한 국내 최초 웹툰 전문 매거진’ 다산북스의 『매거진 조이(magazine JOY)』가 와난 작가의 <집이 없어>로 그 첫 번째 문을 열었다. 와난 작가는 2008년 <어서오세요, 305호에!>와 2013년 <하나(HANA)>, 그리고 2018년 <집이 없어>를 연재하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작가 중 한 명이다.
나는 한때 웹툰을 즐겨 보던 한 명의 독자였다. 그러다 현실의 버거움이란 이유로 잠시 웹툰 보기를 그만뒀고, 그사이 내가 보던 웹툰들이 하나둘 완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와난 작가의 <집이 없어>도 그러한 시기에 보았던 웹툰 중 하나였다. 여전히 이 작품에 대해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하나는 인물의 심리를 연출과 세밀한 표정, 타이틀 일러스트로 표현해내는 디테일. 또 하나는 예측할 수 없는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에 느낀 당황스러움. 내가 당황스러움을 느낀 이유는 이제껏 봐온 웹툰은 대개 인물들이 예측 가능한 범위 내로 움직였고, 가끔 예상을 벗어난다고 해도 당황스러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결말까지 보지 못했음에도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이 작품이 생각나곤 했다. 그렇기에 올해 9월 완결된 <집이 없어>의 완결을 늦게나마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매거진 조이』를 통해 내가 살펴보지 못했던, 내가 현실에 뒤흔들릴 동안 펼쳐졌던 이야기에 대해 살펴보고 싶었다. 그렇게 이 책을 읽어보았고, 하나의 책을 통해 한 작품의 모든 걸 보고 읽는 경험, 다양한 전문가들이 말하는 하나의 작품에 대한 논의를 읽는 경험은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집이 없어>는 적극적인 교화나 사이다 전개 없이 성장에 대해 말한다는 점, 그리고 입체적인 인물과 그러한 인물들의 배경, 과정을 끈질기게 보여주며 가족과 집에 관한 논의를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집이 없어>는 현실에 있을 법한 아픈 경험을 주로 그린 만화인데, 장르상 이 문제를 사이다로 해결해 버리면 좀 무책임하게 느껴질 거 같아요. 기만적일 것도 같고. 아마 사이다 없이도 서로 아픔을 알아채 주고, 멀리서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각자 성장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 와난 작가 인터뷰 중
『매거진 조이 Vol.1: 집이 없어』를 읽으며 떠오른 하나의 키워드는 ‘가능성’이었다. 희망이란 더 좋게 나아갈 가능성이자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라 생각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성장물에는 인물의 과거와 인물 간의 갈등, 고난이 있고 그것을 극복하는 여정을 그려낸다. 처음 등장했던 인물이 처음과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을 이겨내거나 보완하여 변화하는 것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성장물이다.
나 또한 부정할 수 없이 그렇다고 생각해 왔다. 이미 현실에서는 충분히 변화하지 않는 것들에 지쳐 있으며 차가운 현실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콘텐츠 속에서만큼은 고된 현실에서 벗어나 따뜻하고 유대와 연대가 가득한 관계를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도피의 마음이다.
“(작가는) 누구든 오래 지켜볼 수만 있다면 묻힌 보석 같은 진심을 발견할 수 있다는 (…) 가능성을 믿는다. 고해준과 백은영이 악담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상대를 할퀴고 매번 서로를 벼랑까지 몰아가지만 그곳에서 끝끝내 서로를 밀치지 않는 것, 마지막 한 걸음을 디디기 직전에라도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그 가능성의 표현이다.”
- 박사 칼럼니스트
하지만 <집이 없어>는 성장물 만화 속 등장인물이라면 쉽게 변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왔던 기존의 관념을 철저히 부순다. ‘갱생 가능성’이 아닌 ‘밀치지 않고 잠시 손을 잡는 가능성’을 말하는 작품 <집이 없어>. 입체적인 인물들의 복잡하고 현실적인 감정과 서사를 통해 입체적인 집이 쌓여가는 모습. 분명 이 작품이 말하는 ‘집’이란 단란한 가정만을 뜻하는 게 아닐 테다.
‘집’은 단일한 모습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집을 떠나 나만의 독립생활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집’의 의미가 생겨나듯, 혈연이 아님에도 같은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는 이들을 '식구'라 부르듯. 집이 없을지라도 끝내 우리가 만들어갈 ‘집’의 가능성을 이 작품은 놓치지 않는다.
『매거진 조이』는 바쁜 시간 틈틈이 읽던 웹툰을, 스크롤로 무심코 넘어갔던 지점을 다시 세세히 짚어주며 독자에게 자문과 논의의 시간을 만들어준다. 그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세세한 프로필, 비하인드 스토리, 작가와의 인터뷰 등 독자로서 궁금했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이처럼 『매거진 조이 Vol.1: 집이 없어』는 웹툰 <집이 없어>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하지만 해당 작품을 읽어본 적 없거나 아예 제목조차 처음 듣는 이들도 이 책을 통해 <집이 없어>를 접하게 된다면 이 만화를 서서히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을 들게 한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2809)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