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필립스 부인의 꿈의 결실, 400년의 서양 미술사 맛보기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는 총 9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진 전시로, 143점의 소장품을 관람할 수 있다. 해당 전시는 필립스 부부의 초상화를 시작으로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미술’, ‘인상주의 이전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혁명으로’,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인상주의 이후’,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20세기 컨템포러리 아트’,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술 현장’까지 다양한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는 전시 제목에서도 아주 강력히 어필하고 있는 것처럼 클로드 모네부터 앤디 워홀까지 서양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을 원화로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꿈만 같은 컬렉션이다. 특히 해당 특별전은 필립스 부부의 초상으로 개문하며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특별전’의 의의를 더한다.
플로렌스 필립스(1863~1940) 부인은 고국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를 설립했다. 이를 위해 필립스 부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총동원하였고, 남아공 부호들의 후원으로 점점 그 폭을 넓혀 다양한 거장들의 작품을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오늘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중 가장 큰 공공 근현대 미술 컬렉션인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컬렉션’ 특별전이 경주, 부산, 제주에 이어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상륙한 것이다.
취약계층을 위한 미술관 설립을 꿈꾼 플로렌스 필립스 부인의 초상을 뒤이은 섹션은 바로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이다. 당시 가장 부유한 국가로 부상한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들은 부르주아 주택을 꾸미는 것을 목표로 삼아 정물과 풍경, 초상, 일상이 담긴 그림을 그려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였다.
해당 섹션은 가장 인상 깊은 섹션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몇 점의 작품이 주는 오묘한 끌림 때문이었다. 핸드릭 코넬리즈 반 블리엣의 <성 바보 교회의 실내(1665)>는 화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듯한 특유의 빛깔과 색감, 어딘가 부드럽고 뭉툭해 보이는 촉감이 매력적인 그림이다. 특히 이 그림은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 그림으로, 아마 직접 전시장에 소장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라 게릿 아렌츠 반 뒤어스의 <노인이 노래하면 젊은이는 피리를 불어라(1663)>는 일상의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을 보여주지만 나는 그림보단 제목에 이끌린 바 있다.
전시를 구경하다 우연히 도슨트 강의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다. 곧 있을 도슨트 무료 강의를 관람객에게 분주히 안내하는 스태프의 말소리를 전해 들은 나는 홀연 듯 섹션을 넘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1층과 지하 전시 공간을 잇는 공간에서 사람들과 붙어 앉아 듣는 강의는 흥미로웠다. 자유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들려주는 도슨트의 강의는 유용과 유쾌를 넘나들며 진행되었고, 나는 작품을 감상하며 몰랐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앞서 제목이 인상 깊었던 <노인이 노래하면 젊은이는 피리를 불어라>는 우리나라 속담으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와 일맥상통한 말이라고 한다. 또, 도슨트의 강의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토록 오래 마음을 빼앗겼던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 <오필리아(1851~1852)> 속 주인공과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레지나 코르디움(1860)> 속 모델이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해당 도슨트 프로그램은 전시 기간 중 1일 3회(11:00/14:00/16:00) 무료로 운영한다고 하니 관심 있는 이는 시간 맞춰 전시를 즐겨보면 되겠다.
도슨트 강의를 듣고 난 뒤 지하로 내려가다 보면 벽면에 이러한 문구가 쓰여있는 걸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심지어 돌마저도. - 클로드 모네’ ‘모네’의 인지도로 인해 특별전 제목에 모네와 앤디 워홀이 붙었다는 도슨트의 말에도 일리가 있으나, 나는 세상 모든 것의 변화에 주목한 모네이기에 더욱 의미 있게 붙은 제목이지 않을까 싶었다. 서양 미술사 400년의 변화와 흐름을 한 곳에 모은 특별전, 그리고 예술은 유용할 수 있으며 특히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필립스 부인. 마치 세상에 불변한 것은 없으니 변할 수 있다는 무언의 믿음을 주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는 늘 무언가를 찾고 있고, 노력하고 있으며 온 마음을 다해 그 안에 있고자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말에서 필립스 부인의 마음을 아주 잠시 엿볼 수 있겠다. 온 마음을 다해 고국에 미술관을 설립하겠단 꿈을 안고 갖은 노력을 해왔던 필립스 부인. 그저 미술 작품을 들여다본 것이 아니라 잠시 찬란한 결실 속을 홀로 거닐고 온 기분이 든다. 더위가 무르익어가는 8월 31일까지 한 여성 컬렉터의 꿈의 결실을, 거장들의 작품을 원화로 직접 관람할 수 있으니 놓치지 말고 관람해 보길 추천한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215)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