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거 축하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유일하게 넘어서고 싶었던 감독”이라고 칭송한 일본 소마이 신지 감독의 대표작 <이사>가 오는 7월 23일 4K 리마스터링으로 개봉된다. 이 영화는 6학년 소녀 렌이 부모의 이혼을 마주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섬세하고 독특한 연출로 담아낸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식구라 하듯 식사 자리는 그만큼 함께 지내는 이들의 정서적 거리감을 표현하기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 영화의 첫 장면도 렌과 부모, 셋의 식사 자리를 보여준다. 이때 소마이 신지 감독이 표현한 식사 자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그 이유는 일상적인 장면 속 일상적이지 않은 가구와 배치로 인해서다.
삼각형 모양의 식탁에서 각자의 자리를 꿰차고 식사를 하는 세 사람. 날카로운 식탁의 모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다음 날카로운 한 면을 각각 차지하고 있는 세 사람이 눈에 띈다. 이러한 식사 자리는 화목하다기보단 개별적으로 느껴지게끔 한다.
이 첫 장면부터 암시하는 것이 있다. 식탁 위를 살펴보면 아빠보다 엄마와 렌 쪽에 배치된 그릇의 수가 더 많다. 아빠는 홀로 사는 사람처럼 소박한 식사를 하는 듯 몇 없는 반찬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있을 상황, 아빠는 홀로 살기 위해 떠날 것이며 엄마와 렌은 앞으로 둘만의 생활을 꾸려나갈 거란 걸 암시한다.
이때 렌의 몸은 아주 조금 더 아빠에게 가깝도록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렌과 아빠의 정서적인 거리감을 뜻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접시의 개수가 치우쳐져 있기에 그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한 배치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렌은 세 가족이 함께여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소녀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만날 때마다 매일 같이 다퉜고 결국 아빠는 집을 나가 따로 살게 된다. 엄마는 이혼을 결심한 상황. 궁금증에 물어봐도 아빠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엄마는 둘만의 계약서라며 상의 없이 작성한 규칙을 강조할 뿐이다. 그에 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엄마 아빠가 싸워도 참았어. 근데 왜 엄마 아빠는 못 참는 거야?”
6학년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방에 틀어박혀 말도 하지 않고 나오지도 않는 시위, 자신을 붙잡으러 오는 어른들을 피해 도망치기, 아직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다시 다가오는 어른을 밀치기, 계속 달리기….
그러한 혼란 속에서 렌은 도망치듯 달린다. 이때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은 어느 순간 소녀가 도망치기보단 혼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축제가 펼쳐지는 장소에서부터 렌의 기묘한 체험이 시작된다.
밤이 되고 불타오르는 볏짚들과 뭉게뭉게 퍼지는 연기 속에서 렌은 점점 숲속으로 들어간다. 짙은 푸른 밤, 마치 다른 세계에 진입한 듯한 화면 속 렌은 부모를 찾는 새끼 이리처럼 울어보기도 하고 천진난만하게 공기에 떠다니는 무언가를 잡아먹으며 웃기도 한다. 그러다 숲을 헤매고 만신창이가 되어 기진맥진한 채 떠돌다 숲을 빠져나온다. 그 순간 판타지 같던 화면이 현실로 돌아온 듯 바뀌고 렌은 바다 앞 모래사장에 지쳐 눕는다.
이러한 모험은 렌의 내면의 혼란과 성장의 과정을 시각화한 것으로, 비교적 길고 다양하게 헤매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즉 이 영화는 물리적인 이동의 ‘이사’가 아닌 소녀 렌의 ‘마음의 이사’, ‘내면 독립’의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렌이 쉬고 있는 그때, 저 멀리 바닷가에서 용의 머리를 단 배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 옆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해맑게 장난치는 렌이 있다. 이는 과거 세 가족이 함께했던 추억의 모습이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 배가 불타오르기 시작하고 엄마와 아빠는 홀린 듯 연기 속으로 점점 사라진다. 그럼 남은 렌만이 두 사람을 향해 어디 가냐고 애타게 외칠 뿐이다.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렌. 렌은 과거의 렌을 향해 외친다. “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축하합니다!)” 경쾌하고 발랄한 목소리로 반복되는 렌의 ‘축하합니다!’ 소리가 구슬프게 바다로 흘러간다. 그리고 과거의 렌과 현재의 렌은 서로를 안아준다. 그렇게 렌은 모험을 통해 혼자일 수 있게, 또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독립을 축하해. 조금 쓸쓸할지도 모르지만, 추억이 계속되지 못하는 게 슬플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변화하는 사람들과 환경 속에서 앞으로도 너만의 추억을 다채롭게 그려갈 수 있길.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530)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