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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키 Dec 15. 2023

다키와 잠자리

결혼하고 우리 침대는 언제나 북적였다. 강아지 2마리와 사람 2인이 함께 자는 퀸사이즈 침대. 신혼 초에는 더 큰 침대를 사볼까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보려 다니기도 했는데, 결국 침대를 사지 못하고 우리 부부는 퀸사이즈 침대에 테트리스하듯 빈 공간을 채워가며 잤다.


우리 집 강아지들의 만성적인 허리디스크와 짧은 다리를 감안할 때 요즘 나오는 침대들의 매트리스는 공격적으로 높았다. 저상프레임에 둔다고 해도 계단이 필요했을 높은 매트리스는 여러모로 침대에서 떨어져 다칠 것 같기도, 올라올 때 허리를 삐끗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라, 돌이켜보면 침대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멈췄던 이유는 지금 형태의 잠자리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다키는 특이하게 꼭 사람의 팔을 베고 자곤 했는데, 품을 파고들어 팔베개를 하는 다키의 온기가 좋았다. 다키는 몸을 웅크려 겨드랑이 오목한 곳 깊숙이 파고들었고 빈 공간 없이 밀착된 형태에서 묘한 안정감이 들곤 했다.


아내가 보호소에서 다키를 데려 온 첫날부터 팔베개를 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보호소에 오기 전에 다키를 키웠던 사람이 다키의 인간베개 역할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다키의 팔베개 사랑에 보답하던 인간베개의 차례는 아내와 처제와 살던 시절을 거쳐 아내와 나에게 왔고 나는 내 임무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다키가 인간베개를 쓰기 위해 하는 준비동작이 있는데, 아내와 나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뒤 이불속으로 들어간 다음 빙 돌아서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편해 보이는 팔에 자리를 잡곤 했다. 가운데에서 팔을 베고 자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신혼 답지 않게 떨어져 자야 했는데, 이럴 때면 아내에게 사실 다키랑 결혼한 거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우리 부부끼리 낄낄대던 시답지 않은 농담 속에서도 다키는 내 팔베개 하나면 만사 오케이라는 듯 쿨쿨 꿀잠을 잤다.


그래설까 나는 유독 잠자리에서 다키를 예뻐했다. 낮에 재택을 하던 중에 다키가 놀자고 할 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놀아주지 못했다. 밤이 되어서야 다키와 침대에 나란히 누우면 팔베개를 원하는 작은 친구에게 애정이 마구 샘솟았다. 그래서 다키를 벌러덩 눕혀 놓고 팔을 다키 옆에 나란히 두고 바라보곤 했다. 귀염둥이, 예쁜이라고 불러주며 다키를 바라보면 다키가 긴 눈썹의 정말 아름다운 이목구비로 나를 다시 바라봐줬다. 그러면 나는 이 조그만 생명체에게 푹 빠져서 세상의 부러울 것이 없어지곤 했다.


나는 정자세로 자기도 하고, 옆을 보고 자기도 했는데 그렇게 자세를 바꿀 때면 겨드랑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다키를 떼어두곤 했다. 그럴 때면 쿨하게 베개를 베고 다시 잠에 드는 다키를 보면서, 평소 우리는 성격이 좋지 않다고 말했던 다키지만, 우리에게만큼은 한없이 너그러운 강아지였던 것 같다.


다키의 너그러움에 대해 말하자면, 다키는 외로움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났던 것 같다. 우리가 기상 시간이 달라 다른 방에서 잠을 청할 때면 뽀르가 가지 않아서 혼자 있는 쪽에 가서 자리를 채웠다. 내가 코로나로 격리되어 작은 방에서 지낼 때에도 다키는 여러 밤을 내 곁에서 잠을 잤다. 코로나가 아프긴 많이 아팠지만 작은 녀석 때문에 큰 위로가 된 밤들이었다. 만약에 다키가 사람이었으면 반 친구들을 잘 살피는 정의로운 아이였을까 아니면 평소 까칠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들한테는 간이고 쓸개고 내주는 편식쟁이 아이였을까. 어쩌면 잔소리는 많지만 정이 많은 따뜻한 아이였을 것도 같다.


침대에선 다키의 반전 매력이 더 커지곤 했는데, 야무지고 영특한 다키는 코를 정말 심하게 골았다. 그리곤 눈을 뜨고 잤다. 내 겨드랑이에 딱 붙어서 인간베개는 자든지 말든지 5초면 잠에 들어서, 흰자를 번뜩이며 내 귀에 대고 코를 골며 자는 뻔뻔한 모습이 웃겼다. 강아지를 처음 키워 본 초보 견주 입장에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다키의 모습에, 새삼 다키와 내가 간직한 생명력의 동질감을 느끼곤 했다. 돌이켜보니 그렇게 소중함을 느끼는 밤들이 모여서 다키와의 추억이 1년 새 크게 쌓였던 것 같다.


여러모로 손이 닿는 거리에 아내와 뽀르, 그리고 내 겨드랑이에 붙은 껌딱지 다키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원래는 처제가 혼자 썼던 오래된 퀸사이즈 침대가 우리 넷에겐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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