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성이란 건 참 하찮은 구석이 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라던데, 나는 그 이성이 얼마나 매가리 없는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이성이 뚝뚝 끊길 때마다 뒷일을 감당하기 귀찮아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그 뒷일따위 생각 않고 이성을 놓은 적이 있다
나는 테이블에 있는 음식이며 그릇이며 식기들을 있는 대로 집어던졌다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나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인지를 못 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그림이었다
내가 화를 내면서 보이는 물건들을 다 집어던지고 있네
내가 이렇게 소리를 지를 줄 알았나?
늘 이성적인 생활에 집착하고, 자책만 하며 살던 나도 이런 게 가능하구나
어딘가 신기했다
그 후로 사람들은 나를 조심히 대한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착하고 상냥한 인간으로 비위만 맞추고 살기엔 내 자아가 너무 강하다
고분고분한 태도가 맘대로 선을 넘으라는 뜻은 아니다
애초에 당신들이 선만 안 넘었다면 그런 일도 없었겠지
왜 주워담지도 못 할 말을 아무렇게나 해댈까
왜 자꾸 아무 잘못 없는 날 괴롭힐까
이후로 나는 못 할 짓이 없어졌다
다행히 선을 넘는 인간들 또한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