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따위 허락지 않는다
살면서 청순가련 여주인공마냥 쓰러져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디어로 인한 폐해다 정말) 그러나, 가진 게 힘과 건강뿐인 그 시절의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아무 전조 증상도 없이 저는 창고 정리 중에 실신을 했고, 깨어나 보니 저를 찾아낸 손님들이 저를 깨우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대로 일어나지지도 않아서, 거의 억지로 일으켜졌습니다. 젊은 남자 손님께서 저를 부축해 주셔서 그나마 수월하게 일어났던 것 같네요. 그 왜 있잖아요 새끼 기린이 걸음마 떼는 느낌의 워킹. 딱 그 느낌이었습니다.
일이 바빴고, 적응 기간이었어서 제 건강에 별 심각성을 못 느꼈습니다. 그냥 내가 많이 피곤했어서 깜빡 잠이 들었구나, 이 박스 분명 가지런히 정리해 뒀는데 손님이 어지럽히신 건가, 하는 엄청난 생각을 했습니다.
며칠 뒤 병원을 찾아 종합검사를 받아 본 결과, 저는 자율 신경계 이상으로 인해 심장에도 이상이 생긴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심장 문제이긴 하나, 그 원인이 심장 내부에 있는 게 아닌, 그렇지만 신체적 이상을 나타내는 건 심장인... 뭐 그런 병을 발견했습니다.
책에 베인 손가락도 모를 때는 안 아프다가, 알아차리는 순간 막 아파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몸도 그런 반응을 보이더군요.
이후로 저는 병적인 무기력과 소화불량을 달고 살며, 한 달에 한 번씩은 병원에 기어가 수액을 맞아야 하는 그런 몸뚱어리가 됐습니다.
사실 뭐, 내가 난치성 질병에 걸리다니! 불치에 가깝고 아직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은 그런 병을, 내가..! 싶진 않습니다. 이미 몸이 망가져 간다는 신호는 많이 받아 봐서, 오히려 무덤덤했습니다. 기억도 남지 않은 제 실신과, 바닥을 기는 수준의 무기력이 그제서야 납득이 됐습니다. 그 후로 의사 선생님께선 한 번 더 실신하면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리셨습니다. 근데 이게 또 표적 약물도 아니라네요. 아하하 아무튼. 다행히 저는 그 후로 쓰러지진 않았습니다. 대신, 자율 신경계가 파괴되는 걸 몸소 느끼는 중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소화불량과 식욕부진은 제 짱친이 됐습니다. 그래서 먹는 양이 점점 줄더니, 이젠 하루 한 끼 겨우 먹는 날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무기력으로 지쳐 쓰러져 잠드는 것도 어느 정도 일상이 됐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이렇게 살아야지 뭐 어쩌겠습니까. 전 제 건강에 미련이 있는 인간도 아니고,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어쩌겠어, 계속 지쳐 잠들어도 살아야지. 일어나서 또 할 거 하면 되지.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인정받을 수만 있으면 되지. 속도가 뭐 그리 중요해.
근래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음식 냄새에 대한 거부감이 극대화된 것입니다. 엄마는 제게 입덧이 아니냐는 장난을 칠 정도로 전 음식 냄새에 지나치게 예민해졌습니다. 생각보다 음식과 엮여야 하는 상황이 많아서 이에 대한 심각성을 몸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먼저, 아사해서 죽을 것 같아도, 음식 냄새가 역하게 느껴진다면 그 무엇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몸은 밥을 달라고 난리인데, 뇌는 응 아니야를 시전하고 있는 거죠. 둘의 대치 속에서 저는 그냥 뇌의 명령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고요..
저녁 식사 자리가 정말 고역입니다. 당장에라도 구역질이 날 것 같지만, 배는 미친듯이 고파서 그 역함을 견뎌내야 합니다. 아아 정말 괴롭습니다.. 이건 뭐 거식증도 아니고, 자율 신경계 이상이라고 하니 뭐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아까 전에 굶주린 채로 퇴근해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가족이 해 먹은 음식 냄새가 정말 비리고 끔찍하더라고요. 한동안 옷 소매로 코를 가리고 있었을 정도입니다. 안 그러면 정말 구역질이 나고, 물도 못 삼킬 것 같았어요. 지금도 음식 냄새를 빼기 위해 온갖 창문을 열어두고 글을 쓰고 있네요.. 여전히 그 끔찍한 음식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현재 음식의 냄새부터 맡아 보고, 괜찮다면 아주 미량만 입에 넣어 보는 중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과일이나 음료에는 큰 거부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를 상대로 연구를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하하. 웃긴데 안 웃겨.
아무튼 참 복잡다단한 병에만 걸리네요. 이미 건강은 물 건너갔으니, 이 상태라도 유지해 보렵니다. 예.. 오늘의 결론은 참 밍밍하네요.
배가 고파요. 뭐라도 먹을까, 싶네요. 소화를 잘 시킬런지는 미지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