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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간극

by jedit

만남이라는 것은 기이하다.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은 나의 세계를 점점 더 확장시키게 한다.

그러나 나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만남과 별도로

다른 세계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만남이 있다.

'연애'라는 이름의 만남이다.



연애를 시작한다는 것은 제법 많은 결심을 해야 한다. 특히나 이십 대 후반, 서른의 연애 시작은 이전의 연애보다 더 많은 다짐을 각오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 끝에 시작한 연애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생각과 고민, 존중을 야기한다. 이와 같이 충분한 생각을 거친 후에 시작된 연애는 상대방의 많은 부분을 함께 들여온다.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그 사람의 배경, 성격, 취향, 지식 등 많은 것들이 내포하고 있다.


그로 인해 그 사람이 즐겨 듣는 음악, 눈여겨보는 물건들, 의외의 성격, 좋아하는 요리 등 그런 것들을 나는 알게 된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었던 그 사람의 많은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은 의외로 만화책을 좋아했고 흥 넘치는 음악을 좋아한다. 운전을 생각보다 터프하게 하는 편이고 히어로 영화를 보다 슬픈 장면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수성이 많은 사람이란 것을 알게 한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자랐기에 서로 다른 문화와 견해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새로운 관점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나에 비해 여행을 많이 다녀보았던 그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자면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그만큼 이야기하는데 재능이 있다.


그 사람과 같은 시간을 보낼수록 나 자신도 변화한다. 그 사람의 세계와 점차 융화되어 가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의 새로운 면도 찾게 된다.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을 그 사람을 통해 듣게 되면서 나는 그들에 대한 인상을 나만의 시각으로 그리기도 한다. 또는 직접적으로 만나면서 어색하지만 조금이나마 그 사람을 통해 다양한 세상의 사람들을 엿보게 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계를 조금씩 확장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반면에 그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나일지라도 그 사람은 내가 알지 못하는 아픔이 존재한다. 하는 일에 대해 회의감이 들거나 목표 의식을 잃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빚거나 갈등을 겪고 있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이것들은 내가 찾아야 하는 그 사람의 고통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설명 없이 그 고통을 찾으려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이러한 맥락에서 서로 간의 마음에 간극이 생기게 된다. 보다 솔직해지면 쉽게 풀어질 문제임에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너무도 비참하게 그 고통을 무시한다. 그 생각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그 형태는 자존심일 수도, 은연중에 드러나길 바라는 것일 수도,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간극이 넓어짐에 따라 서로의 마음보다 주변의 말들과 상황들이 툭툭 서로의 세계를 침범한다. 이것들은 연애를 하는 동안에 서로에게 집중하고 서로의 세계에 감사했던 모든 날들을 너무도 쉽게 무시한다.


친구, 동료, 가족과의 관계와 다르게 연인이라는 관계는 그 어떤 관계보다 서로의 믿음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의 사랑이 너무 강하더라도 다른 한쪽의 믿음이 치우치게 되면 쉽사리 무너진다. 수평을 이루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 수평이 순조롭고 견고할 때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나 조금이라도 기울어지면 쉽사리 흔들린다. 그리고 수평을 흔들리게 하는 대부분의 침범은 외부(주변의 말, 상황 등)에서 온다.


이는 가장 격정적이고 소중한 관계이기 때문에 냉정한 시각을 갖지 못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침범이 두 사람 중 한쪽의 세계에 들어오는 순간 그 침범은 점차 부풀려지고 상대방 혹은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으려 한다.


사실 두 사람 중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인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두 사람의 세계의 막이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로에 대한 존중, 신뢰, 사랑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두 사람이 공유하는 세계의 껍질은 외부의 침범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두꺼워진다. 마음의 간극은 점차 좁혀지고 서로 간의 간극을 이해하는 관계이다.


마음의 간극은 어느 관계에서나 필요하며 좁힐 수는 있을지언정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서로의 간극을 통해 우리는 보지 못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간극은 절대적으로 관계에 있어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간격이 적정선을 벗어나게 되면 관계의 유지성이 위태로워진다. 이 간극은 평행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서 간극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순간에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대방의 간극이 멀어짐에 따라 다른 한쪽의 상대방은 그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를 한다. 이는 연애를 시작하며 진행하는 매 순간 이뤄지는 상호작용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멈추는 순간 관계는 끝이 난다.


연애를 시작하는 관계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세상의 절반을 가져온다. 이것은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완전한 세상을 선물한다. 친구나 동료도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가져다 주지만 그것은 연애라는 관계에서 주고받는 세상과는 다르게 일부분을 가져오게 한다. 친구나 동료가 가져오는 세상은 연인이 주는 세상과 다르게 별개의 세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연인이 가져오는 세계는 완결된 세계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어떠한 관계보다 밀접하고 견고한 간극을 가질 수 있으나 반면으로는 깨지기 쉬울 수도 있다. 즉 연인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간극은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연인의 헤어짐은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것보다 고통스럽다. 온전한 세계의 반쪽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남기고 간 공허한 공간에는 너무도 괴롭고 우울함이 가득하다. 이는 간극이라는 존재 자체의 소멸을 의미한다.


이후에 많은 시간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 텅 빈 공간을 바라보게 된다. 바라보다 보면 공간은 비어있지만 추억이라는 이름의 파편들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파편들을 주워다 보면서 나는 그 사람과 같이 갔던 카페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그 사람과 첫 데이트 때 봤던 영화의 후속작이 곧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도 한다. 광화문을 무심코 걷다가 마주한 수많은 인파가 무색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두 사람의 추억이 가슴아프게 찌를 때도 있다.


이 파편들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무시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나를 찔러 기억을 되살아나게 하고 후회하게 만들기도 한다. 분명 괴롭고 잔인한 것이지만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사라진 마음의 간극에 남겨진 파편들은 사람에 따라 무뎌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마음의 간극은 사라졌지만 마음은 남아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파편들이 도리어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새로워진 마음은 새로운 관계에서 마음의 간극을 이해하는데 굳은 마음을 가지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간극이라는 것은

늘 많은 고민들과 생각, 존중을 담은 관계 속의 이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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