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는 왜 스스로를 막지 못했는가

by HRly



카카오는 한때 대학생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1위였다. 수평적 문화, 구성원 신뢰, 자기주도성이라는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단어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임원 결혼식에 직원이 동원되고, 논란의 당사자가 CTO로 복귀하고, 창업자가 법정에 서고, 15년 된 국민 메신저가 엿새 만에 개편을 철회하는 장면을 보고 있다.

나쁜 사람들이 모인 걸까. 나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보고 싶다. 카카오는 왜 스스로를 막지 못했는가.


헤겔: 선언된 가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헤겔은 공동체의 윤리를 두 층위로 구분했다. 하나는 선언된 가치—"우리는 수평적이다", "우리는 서로 신뢰한다"는 언어다. 다른 하나는 그 가치가 제도와 관행 속에 살아 숨쉬는 상태다. 헤겔은 전자를 모랄리테트(Moralität), 후자를 지틀리히카이트(Sittlichkeit)라고 불렀다.


그의 핵심 통찰은 이것이다. 선언된 가치는 그것을 실행하게 만드는 구조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조가 없을 때, 그 가치는 편리할 때만 소환되는 장식이 된다. 지틀리히카이트는 가족, 시민사회, 국가처럼 구체적인 제도 속에 체화된 윤리적 실천이다. 말이 아니라 절차, 선언이 아니라 관행으로 되어야 지틀리히카이트라도 불릴 수 있다.


카카오의 조직문화가 정확히 그 간극에 놓였다. 수평과 신뢰를 말했지만, 그것을 제도로 내려오게 만드는 장치—잘못된 결정에 제동을 거는 절차, 권한 남용을 막는 구조, 책임을 묻는 일관된 기준—가 없었다. 그 공백이 조직 전체에 걸쳐 같은 패턴으로 반복됐다.


첫 번째 패턴: 채용

카카오에 합류한 홍민택 CPO는 6개월 만에 카카오톡 전체 개편을 총괄하는 권한을 얻었다. 그 이후 자신의 전 직장 동료들을 코딩테스트도 없이, 편법 전형으로 대거 데려왔다. 채용 동결 기조였음에도 예외가 적용됐다. 이것은 나쁜 의도로 인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오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심리다. 문제는 그 심리가 조직의 검증 절차를 통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계가 절차를 이겼다.


절차가 무너질 때 조직 심리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조직심리학자 타일러(Tyler, 1989)와 레벤탈(Leventhal, 1980)은 사람들이 결과의 유불리보다 절차의 공정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레벤탈은 공정한 절차의 조건으로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일관성, 편견 억제, 정확성, 수정 가능성, 대표성, 윤리성. 홍 CPO의 채용 방식은 이 중 대부분을 위반했다. 같은 직군에 다른 기준이 적용됐고, 이의를 제기할 경로도 없었다.


이때 구성원들이 학습하는 것은 단순히 "불공평하다"는 감정이 아니다. "이 조직에서 규칙은 힘 있는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암묵적 규범이다. 그 학습은 이후 모든 의사결정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핫라인 제보가 2020년 7건에서 2024년 18건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 조합원의 68%가 폭언과 고압적 태도를 목격했다고 답한 것은 이 학습이 누적된 결과로 읽을 수 있다.


고맥락 사회에서 반대는 왜 소리를 내지 못하는가

블라인드에 올라온 카카오 직원들의 글은 익명이었다. 실명으로는 말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실명이 아니더라도, 불공정하다고 대놓고 말하기보다는 돌려 말한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 1976)은 문화를 고맥락(High-Context)과 저맥락(Low-Context)으로 구분했다. 고맥락 문화에서는 말보다 관계와 위계가 우선한다. 반대 의사를 직접 표현하는 것은 관계를 해치는 행위로 인식된다. 한국은 대표적인 고맥락 사회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표방해도 이 문화적 기반이 바뀌지 않으면, 반대는 공식 채널이 아니라 익명 게시판과 퇴사로 표출된다. Edmondson(1999)의 심리적 안전감 연구는 이것을 뒷받침한다. 심리적 안전감은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리더가 먼저 반대 의견에 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반복해서 증명할 때만 형성된다. 카카오 내부에서 반대가 결과에 반영된 사례가 없다면, 구성원은 침묵을 학습한다.


어쩌면 이 구조는 의도된 것일 수 있다

여기서 불편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절차가 없는 조직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Robert Michels, 1911)는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을 제시했다. 어떤 조직이든 시간이 지나면 소수의 지도부가 권력을 독점하는 방향으로 수렴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민주적·수평적 가치를 표방하는 조직일수록 이 경향이 더 교묘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위계 없는 수평 구조라는 언어가 오히려 권력 집중을 감춘다.


Pfeffer(1981)의 조직권력론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제도와 절차가 미성숙할수록 권력은 공식 직위보다 관계망과 정보를 장악한 소수에게 집중된다. 그리고 그 소수는—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절차의 제도화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 절차가 생기면 자신의 재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카카오가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 제도화가 지연된 것이 단순한 방치였을까. 아니면 창업자 중심의 절대적 의사결정권을 유지하는 데 미성숙한 제도가 더 편리했던 것은 아닐까. 수평적 문화라는 언어는 위계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모든 권력이 소수에게 수렴하는 구조를 가리는 언어가 될 수 있다. 절차 없는 수평은, 결국 가장 강한 사람의 뜻이 곧 절차가 되는 구조다.


두 번째 패턴: 의사결정

그리고 2025년 1월, 인스타그램이 피드 비율을 예고 없이 갑자기 바꿨다가 전 세계 사용자에게 원성을 샀고, CEO 아담 모세리가 직접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고 사과하는 장면이 뉴스를 뒤덮었다.

카카오 CPO가 그걸 몰랐을 리 없다. 알면서도 9개월 뒤 같은 방식으로 강행했다. 경쟁사의 공개적 실패도, 내부의 반대도, 사용자가 15년간 카카오톡에 쌓아온 습관과 감정도—아무것도 결정의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모두 반대했다. 직원들은 블라인드에 "동료들의 자존감이 무너지고 있다"고 썼다.


CEO가 조급한 건 이해할 수 있다. Cyert & March(1963)의 조직행동 이론에 따르면, 성과 압박 아래 놓인 의사결정자는 최적해를 탐색하기보다 즉각적으로 작동할 것 같은 해결책에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그 조급함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구조가 없었다는 것이다.


Brown, Treviño & Harrison(2005)의 윤리적 리더십 연구는, 리더의 행동과 말이 일치할 때만 조직 전체의 규범이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대로 리더가 내부 반대를 무시하고 외부 신호를 무시하며 강행할 때, 조직은 그것을 모델로 학습한다. "여기서는 빠른 실행이 신중한 검토보다 중요하다"는 규범이 조직에 새겨진다.

카카오에는 속도를 늦출 권한을 가진 장치가 없었다. 이것이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증거는, 같은 패턴이 채용에서도 의사결정에서도 반복됐다는 사실이다.


헤겔로의 귀결: 그릇이 없는 조직

두 패턴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지틀리히카이트가 없는 조직—가치는 있지만 그것을 제도로 만들지 않은 조직—은 조급한 개인이 등장했을 때 그것을 흡수할 그릇이 없다. 구성원이 반대해도 절차가 없으면 무력하고, 외부 신호가 있어도 검토하는 구조가 없으면 무시된다. 책임을 물어야 할 때 기준이 없으면 넘어간다.

헤겔은 정신(Geist)이 자신이 만든 제도와 구조 속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 때 소외(Entfremdung)가 발생한다고 봤다. 카카오의 초창기 문화—작은 팀이 모든 것을 걸고 함께 만들어가던 그 정신—는 진짜였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이 팽창하면서 그 정신은 "영어 이름을 쓴다", "수평적이다"라는 형식으로만 남고 살아있는 실천을 잃었다. 구성원 68%가 폭언을 목격했다는 조사 결과는, 선언된 가치와 실제 경험 사이의 균열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보여준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채용에서 권한 부여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 신뢰는 관계에서 오지만, 권한은 검증에서 나와야 한다. 6개월 만에 핵심 조직 전체를 맡기는 건 신뢰가 아니라 검증의 포기다. 관계망 채용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같은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야 한다. 예외가 생기는 순간 절차는 힘을 잃는다.


의사결정 구조에 제동 장치가 필요하다. 내부 반대를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절차, 외부 사례를 검토하는 최소한의 관문, 파일럿 테스트를 의무화하는 규정. 이것들이 귀찮은 관료주의가 아니라 조직을 지키는 안전망이다. Edmondson의 연구가 보여주듯, 반대 의견이 실제로 결과에 반영된 경험이 쌓일 때 구성원은 비로소 입을 연다.

책임의 일관성이 문화를 만든다. 논란이 있어도 자리가 유지되고, 실패해도 책임이 불분명한 관행이 반복되면, 다음번 검증 생략은 더 쉬워진다. Tyler의 절차적 공정성 연구가 보여주듯, 구성원은 결과보다 절차를 본다. 가장 힘 있는 사람이 같은 기준으로 책임을 질 때, 그 장면이 조직의 실제 규범이 된다.

카카오가 수평과 신뢰를 말하는 동안, 실제 구조는 그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가치를 선언하는 것과 그 가치를 제도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좋은 조직문화는 좋은 말에서 오지 않는다. 나쁜 결정이 걸러지는 구조에서 온다.



참고

Hegel, G.W.F. (1807). Phänomenologie des Geistes

Hegel, G.W.F. (1821).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Tyler, T.R. (1989). The psychology of procedural justice. JPSP, 57(5)

Leventhal, G.S. (1980). What should be done with equity theory? In K.J. Gergen et al. (Eds.), Social Exchange

Hall, E.T. (1976). Beyond Culture

Edmondson, A.C. (1999). Psychological safety and learning behavior in work teams. ASQ, 44(2)

Michels, R. (1911). Political Parties

Pfeffer, J. (1981). Power in Organizations

Brown, M.E., Treviño, L.K., & Harrison, D.A. (2005). Ethical leadership. OBHDP, 97(2)

Cyert, R.M., & March, J.G. (1963). A Behavioral Theory of the Firm

조선비즈 (2026.02.23). [길 잃은 카카오]③ 직원 신뢰 잃은 임원들

글로벌에픽 (2025.09.30). 카카오톡 改惡 논란의 주역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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