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자답
우린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산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모른 채, 잊은 채, 지금 당장 현실이 아니니 실감하지 못한 채 주어진 시간을 살아간다. 아니 살아낸다.
내겐 시간에 대한 조급함이 있다.
왜 이런 조급증이 생겼을까?
아마도 후천적인 것 같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아마 혼자 보내는 시간이었다면 이런 강박은 없었을지도
직업병인가?
그런 것 같다.
보육교사로, 방과 후 아동교사로, 강사로
아이들과 시간을 주로 보냈는데
그들의 미래를 발달과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반에 함께하는 아이들 발달 수준이 천차만별이라서 기준을 두고 커리큘럼을 짠다 해도 반드시 못 따라오거나 지루해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교사 재량 것 이들의 어려움과 다름을 해결한다 해도 역부족일 때가 있다. 항상 이 부분을 고민해왔던 것 같다. 모두 함께 동일한 목표지점에 도달하길 바라며
그러나 그런 마음을 알리가 없는 아이나 아이의 부모는 언제나 감사보다는 불만사항을 말한다. 물론 감사하다며 선물이며 음료와 간식도 챙겨주시고 편지를 써주시거나 말을 건네시는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훨씬 더 많았지만 소수의 다름을 가진 이들이 꼭 말썽을 일으켜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 당황스럽게 하고 심장을 콩당거리게 해 강박이 생기게 할 정도니, 본인들도 자신들의 아이들을 키워봤으니 더 잘 알터인데도 선생이 모든 걸 다 해 주는 도깨비방망이인 줄 알고 마구 휘둘러댄다. 결국 함께하는 남의 자녀보다 내 자녀만 봐 달라는 것인데 가능하지가 않다.
'그러시다면 과외를 시키심이 어떠실지...' 생각만 가져본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삼키는 말.
물론 과외를 받는다고 다 해결되지는 않을 테니, 그 과외선생은 무슨 죄로 그 특이한 아이와 부모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아무튼, 내겐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다.
시간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꽉 채워야 한다는 그런 강박
그래서인지 늘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해야 한다는...
그러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불현듯 내가 가엾어진다.
자유가 있는 요즘은 매일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시간을 시기를 책임진다는 것은 상당한 사명과 희생이 요구된다.
그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이 안된다. 시기가 어릴수록
그 어려운걸 내가 하고 있었다니...
아마 알고서는 못해냈을 일들
그 귀한 일들을, 힘든 일들을 해왔었다.
힘들고 귀한 일들을 감당하면서 감사보다 질책이, 인정보다 비교의 말들이 크게 느껴지던 시기를 지나 매일이 소중한 시간들을 가지고 있으니 그때 받지 못한 보상을 조금이라도 받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엔 뭔지 모를 불안이 찾아오지만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도 연습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상황을 불안으로 채우고 싶진 않다.
자유로 여기고 자유를 누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