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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재회한다면

월급쟁이가 보는 글

by 가리느까

퇴직 준비 연수에 들어간 직장 선배(왕년에 갑질깨나 하던 CEO)가 있습니다.

그가 사실상 직장을 '나갔기' 때문에 한자리 올랐다고나 할까요, 결재가 올라오는데 가만히 보니 그분이 연수 기간 겸직을 신청했데요.

'귀농생활(과수원 농사), 연간 예산 소득액 : 500만 원'이라고 쓰고 자필 서명되어 있었습니다.

직장 생활할 때나 상사이지 나가고 나면 한 사람의 노인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소득 비교를 하게 됐는데요.

연봉을 1억 넘게 받던 그는 월 소득 500만 원으로 가치가 디스카운트된 셈이었으나, 배당주 투자자인 저는 월급 외 연간 배당금이라는 구렁이 아래턱이 버티고 있습죠.


그는 뜨거운 햇빛 아래 농사를 지어야만 1년에 500만 원을 벌겠지만, 저는 가만히 앉아서도 돈이 돈을 벌어 온다는 게 아닙니까.

현금 창출 시스템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 시스템의 밑천 근원은 다달이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입니다.


누울 자리도 보지 않고 발을 뻗었다가는, 생각만 해도 오싹하네요.

(파이어족은 개뿔) 퇴직 전까지 한 푼이라도 더 열심히 벌어야겠습니다.

나중에 퇴직하면 그의 과수원 농장에 찾아가 보고 싶네요.

그때, 아마도 이런 대화를 나눌 것 같습니다.


He: "그래, 너도 퇴직했다며? 너는 요새 뭐 먹고사노?"


I: "그냥 매달 나오는 돈으로 먹고 놉니다."

He: "그래? 무슨 건물이라도 샀나 보지?"

I: "아뇨, 그런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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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