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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파인 Jan 02. 2021

[2020 올해의 드라마①]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행복을 찾아가는 처절한 여정 

21세기를 미디어 사회라고들 한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뉴'미디어 사회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나는, 그 미디어들의 영향을 담뿍 받으면서 자랐다. 2006년, 송일국 배우가 황금색 갑옷을 입고 날아오르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의 전공을 선택했을까? 

그 수많은 미디어들 중에서, 나에게 제일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단언컨대 TV드라마다.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평일 밤 10시, 또는 주말 저녁 8시에는 온 가족이 TV 앞에 둘러앉아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브라운관 TV 뒤로 들어가면 TV에 나올 수 있는 줄 알았던 아이는 그렇게 성실한 드라마 덕후(?)가 되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덕후 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일과로는 도저히 드라마 본방을 볼 수 없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면 이미 10시였다. 야자가 끝났다고 내 하루가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니, 시간 맞춰 tv 앞에 앉는 것이 귀찮아졌다. 집에서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밖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즐거웠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내 인생에서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도 서서히 작아져갔다. 

그러다 이제는 작년이 된 2020년, 드라마와 눈물겨운 화해를 했다. 모두가 집콕을 권장받는 대 코로나 시대에, 드라마만큼 재미있는 것이 또 없었다. <사랑의 불시착>부터 시작해서 <펜트하우스>까지,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드라마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1년을 보냈다. 그 중 가장 깊이 몰입했던, '올해작년의 드라마'를 2편(3편?)정도 뽑아보려고 한다. 그 포문을, 한여름에 시작해서 가을의 한복판에 마침표를 찍은,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열어 본다. 



"좋은 드라마"란 무엇일까.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거고, 또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답들이 있겠지만, 나는 '드라마와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게' 해주는 드라마들을 좋아한다. 드라마 속 인물들에 '과몰입'해서, 진심으로 주인공들의 행복을 빌게 되는 그런 드라마.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주인공의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나까지 힘들어지는 드라마'라고 정의하고 싶다. 예지(임수향 분)와 환(지수 분), 그리고 진(하석진 분)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누구나 이 정의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좌측부터 서 진(하석진 분), 오예지(임수향 분), 그리고 서 환(지수 분) (출처 : MBC 공식 홈페이지)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아주 흥미롭지만 딱 그만큼 위험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형수를 사랑하는 시동생.


 한적한 시골마을(양평으로 설정된 듯 하다)에 사는 고등학생 환은 미술 교생 선생님으로 학교에 온 예지에게 한눈에 반한다. 교생 실습 기간 동안 예지가 환의 옆집에 묵으면서 둘은 점차 가까워지지만, 예지는 결국 진을 자신의 짝으로 선택한다. 어릴 때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학대와 폭력을 일삼는 고모 밑에서 자란 예지는 아직 어리고 때로는 불안정한 환 대신 진을 선택했다. 고모로부터, 오래된 족쇄로부터 자신을 떼어내 줄 수 있는 강한 사람. 든든한 고목이자 버팀목. 진은 예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겠다며 꾸준히 구애했고, 마침내 그 손을 잡은 예지도, 그리고 화면 너머에서 드라마를 보는 나도, 진이 그런 존재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진은 카레이싱 대회에 레이서로 출전했다가 사고를 당하고,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았다면 다친 곳은 없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기다린 시간이 7년, 어느덧 청년이 된 환은 괴로워하는 예지를 보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그 긴 시간을 건너, 진은 결국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돌아온다. 언제나 타오르는 태양 같던 진은, 사고와 그로 인한 장애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세상에 다시 없을 열등감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거기다 진이 7년 동안 (구)애인이었던 캐리정(황승언 분)과 함께 지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예지와 진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예지는 양평을 떠나와 친모와 제주도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진과는 이혼을 했고, 환이 마지막으로 제주도에 내려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연출이 압권이다. 

(사진을 못찾았다....ㅠㅠ 찾는대로 수정할거야) 




예지의 삶은 단 하나도 순조롭지 않았다. 

진이 그 구원인 줄 알았으나,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었다. 

그렇다고 환이가 그 구원이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 초기에, 아직 고모가 예지를 휘두를 수 있다고 믿을 때, 그 고리를 강하게 끊어준 건 분명 진이었다. 진에게는 분명 어른스러움 같은 것이 보였다. 카리스마라고나 할까. 

하지만, 진의 강인함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완벽할 때에만 제대로 발현된다. 그 완벽함이 깨지자, 강인함 또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열등감, 비겁함, 치졸함 같은 것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살면서 단 한 순간도 완벽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진의 오만함은 그럼에도 남아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래서 공식 인물 소개에서 이렇게 표현했나보다. "더 약한 쪽은 진"이라고. 

처음부터 진보다는 환이 좋았다. 오만하고, 그래서 이기적인 진과는 다르게, 환은 따뜻했다. 아직도 언어로 명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환의 사랑은 조금 더 맑고 순수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은 단단했다. 진이 실종된 곳이 미국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환이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7년 내내 온갖 노숙자 보호소는 다 쫓아다니면서 희망과 절망을 오갔지만, 그 와중에도 예지에게 달려와 포근한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친구였다. 형의 여자인 걸 알면서도, 그게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일인 걸 알면서도, 그 불구덩이로 불나방처럼 뛰어들던 우리 환이.


그래서 예지가 단 한 순간만이라도 환이를 봐주기를 바랐다. 사회적 통념이고 도의고 다 집어치워도 좋으니까, 그냥 둘이 도망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결국 사회적 통념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그 때문에 드라마의 중후반부는 혹평을 많이 받았다. 모두들 바랐던 것 같다. 결국 환과 예지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격정적인 멜로를. 어떤 사람들은 제작진이 과감하지 못하다고도 했다. 상도덕이니 예의니 하는 것들에 얽매여서, 기획의도도 내팽겨치고 산으로 가고 있다고.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제작진은 처음부터 금지된 사랑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노렸던 건 아닐까. 그야말로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예지와, 그 뒤를 따르며 덩달아 처절해지는 환을 보면서 슬픔과 안타까움에서 오는 희열을 느끼기를 바란 게 아닐까. 

권선징악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엔딩은 시대를 막론한 진리지만, 남녀주인공이 이어지지 않아야 시청자가 행복한 작품들이 있다. <건축학개론>이 그랬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도 그러하다. 처절하게 살아온 예지가 처절하게 진을 기다리고,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진을 처절하게 품으려다 결국 벗어나는 처절한 이야기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을 것 같다. 



p.s. 중후반부 시청률이 너무 안 좋아서 연말 시상식은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임수향 배우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우리 환이도 챙겨줬으면 좋았겠지만(ㅠㅠ) 더 좋은 작품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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