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파인 Sep 06. 2023

0. 시간의 문을 열다

요즈음의 궁궐은 '아름답다'. 

답답한 빌딩숲을 잠시 벗어나 이색적인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곳, 

계절에 발 맞추어 색을 바꾸는 풍경 아래에서 한복을 입고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곳.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궁궐은 사랑받고 있다. 

이색 데이트 장소로, 혹은 야외 사진관으로 각광받는 궁궐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미처 따라잡을 새도 없이 앞으로만 내달리는 세상에서, 과거에 머무르는 대신 현재와 공존할 방법을 찾았구나, 싶어서다. 

앞으로도 그렇겠구나, 적어도 지나간 시대의 것이라고 버려지지는 않겠구나, 싶어서. 






서울의 궁궐이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지는 - 개별 궁궐마다 차이는 있지만 - 대략 530년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500년보다 550년에 더 가까운 세월이다. 

긴 시간 동안 궁궐은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많은 부침을 겪었다. 큰 불이 나 홀랑 다 타 버리기도 했고, 전쟁의 참화도 겪었으며, 의도적인 훼손과 명분 없는 복원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게 되었느냐 하면 단연 근대 이후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일제의 강점 이후다. 

개항과 동시에 쏟아져 들어온 서양의 문물은 언제나 보수의 첨단을 달리는 궁궐에까지 그 자리를 넓혔다. 최초로 전깃불을 밝힌 곳이 경복궁 안에 있는 건청궁이었고, 석조전이니 돈덕전이니 하는 서양식 건축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섰으며, 창호지는 유리창으로 바뀌었다. 

나라가 망하고 나서는 철저하게 훼손되기도 했다. 경복궁을 비집고 들어온 조선 총독부 청사와, 야금야금 영역이 쪼그라든 덕수궁, 그리고 공원으로 전락한 창경궁. 


구시대의 상징이었던 궁궐은 실컷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새로운 시대를 결국 삼켜냈다. 그 때의 흔적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혹은 상이군인의 흉터처럼 현재의 궁궐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궁궐이 어떤 시간을 겪었는지, 어떤 모습이었다가 어떻게 변화했으며 어쩌다 지금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 그 중간 과정의 흔적을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지 따위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궁궐에 추억을, 혹은 기억과 기록을 남기러 가는 분들이 언젠가 이런 흔적들을 용케 찾아내 들여다보기를 바라면서. 




*참고) 이 시리즈의 정식 제목은 <궁궐, 근대를 삼키다> 입니다. 

브런치 시스템 상 매거진 제목에는 쉼표(,)를 쓰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부득이하게 <유잼이고 싶은 궁궐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쉼표를 뺐더니 영 이상해서요...^^ 추후 브런치북은 정식 제목으로 발간할 예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