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공감이 오히려 독이 될 때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상대방과의 공감력을 키우는 데 그 답이 있을까.
나는 비교적 이성적인 사람이다. 감정보다는 팩트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원인을 분석하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먼저 따지게 된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나의 방식과는 다르게 흘러갈 때가 많다.
간혹, 사건의 원인이 명확히 본인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위로와 공감만을 강하게 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느낀 서운함과 억울함에 집중하며, 타인의 반응에만 몰입한다. 팩트를 기반으로 사고하는 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공감을 잘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일까?’ 세상에는 거짓된 공감도 존재한다. 때로는 진심이 아니더라도 공감하는 척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공감력이 높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반면, 나는 사실에 입각해 말한 것뿐인데 “공감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좀 달랐다. 상대는 집요하게 공감을 요구했고, 급기야 사과까지 받아내려 했다. 문제는, 그 사건의 귀책사유가 명확히 그 사람에게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그 사건에 대해 적당히 공감하는 척했고, 그의 편인 척했다. 그때는 갈등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더 큰 화근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억울한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번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특히 직장 내에서의 인간관계는 더욱 복잡하다. 대표로서 나는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귀책사유가 분명하더라도, 상대방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을 지적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포장하는 데 능숙하다는 것. 본인이 원인제공자인 사실은 철저히 숨긴 채, 마치 상대가 몰상식하게 잘못한 것처럼 주변에 전하곤 한다. 이번 사건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오늘, ‘공감’도 중요하지만 ‘팩트’는 더더욱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적당한 공감은 오히려 상대에게 독이 될 수 있다. 때론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결국은 성장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공감과 팩트, 그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균형을 고민한다. 그게 인간관계를 지키는 또 다른 방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