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
남편의 금연 일주일째다.
담배 부분은 포기한 지 한참 되었는데, 스스로 끊겠다니 이게 웬 경사인가!
담배를 끊으면 과자 등의 주전부리가 당기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남편은 스파클링 워터를 잔뜩 주문했다. 신기하게도 그걸 마시면 담배 생각이 싹 가신다는 것이었다. 집 앞에는 일주일 텀으로 배달된 스파클링 워터가 가득 쌓였다.
'헉 저 무거운 걸 어찌 들고 들어가나'
고민하던 찰나,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었으니,
바로 내가 유일하게 준비했던 혼수 - 냉장고에 관한 것이다.
나보다 앞서 결혼을 준비한 친구들을 지켜보면, 대부분 그 과정을 힘들어했다.
특히 혼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싸운다는 것, 생전 처음 거금을 써야 하는 일이니 당연히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듯했다. 다행히도 난 살림살이가 대부분 갖춰진 시댁에 들어가는 터라 마음이 놓였다.
"진짜 몸만 가도 되는 거야?"
"그럼!"
하지만 결혼이 다가올수록 빈손으로 간다는 것이 민망해졌고, 남편과 상의 후 혼수로 냉장고를 사 가기로 했다. 처음 인사드리러 갔을 때 오래된 냉장고가 맘이 쓰였기 때문이다. 남편이 시어머님과 제품을 고르면 내가 결제해 주기로 했다. 당시 나와 남편은 결혼 자체에 많은 돈을 쓰는 것을 원치 않았고, 감사히도 의견이 일치했다. 적당한 사양의 가성비 좋은 냉장고를 구매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날 저녁, 카톡이 울렸다.
"큰일 났어. 엄마가 자꾸 최신형 제일 비싼 냉장고만 구경하고 있어."
"... 정말??"
당시 S 전자에서 스파클링 워터가 나오는 냉장고를 새로 출시했는데, 시어머님께서 자꾸 그 모델을 눈독 들이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가성비 좋은 다른 냉장고를 추천했으나 잘 먹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머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냉장고는 스파클링 워터가 나오는 기능을 추가했다는 이유로 다른 모델보다 100만 원가량 더 비쌌다. 게다가 전용 실린더를 추가 구매하고 주기적으로 교체해 줘야 한다고 했다.
나는 스파클링 워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전에 호기심에 한번 마셔봤다가 상상도 못 한 맛에 식겁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나 마시는 것이지 한국인의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 그 냉장고를 사고 싶어 하신다니, 일단 남편에게 물었다.
“음... 혹시 어머님께서 스파클링 워터를 좋아하셔?”
“아니, 한 번도 안 먹어 봤대. 근데 스파클링 워터가 뭐야?? 사이다 같은 건가?”
난 스파클링 워터의 난해한 맛을 설명하고, 굳이 그 기능이 필요 없음을 어필했다. 결국 남편은 어렵게 어머님을 설득하여 적당한 사양의 냉장고를 고르게 했다. 사태는 가까스로 마무리되어 무사히 가성비 좋은 냉장고를 살 수 있었다.
며느리 돈으로 냉장고를 사는 것을 아셨으면서 왜 가장 비싼 것을 갖고 싶어 하셨는지..?
당시에는 시어머님께서 철없이 구시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시어머님과의 다름을 느낀 첫 경험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님께서는 뭐든지 좀 더 좋은 것! 을 사시는 분이었는데, 가령 이런 식이었다.
나 : "어머님, 이 참기름 요 앞 마트에서 1+1이라 사 왔어요!!" <원산지 - 중국>
시어머님 : "......"(알 수 없는 미소)
다음 날, 방앗간에서 손 수 짠 국산 참기름 6병이 우리 집에 왔다.
고기는 무조건 한우
참기름/들기름/깨 등등 식재료는 국내산
언제나 제철 과일 한가득 구매
침구류는 순면
아이 책은 절대 새 거(남이 보던 책 안됨)
등등
짠순이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친정엄마 밑에서 자란 나였기에 너무도 다른 두 어머니의 모습이 충격이었다.
"우리 그때 스파클링 냉장고 샀으면 어땠을까?"
대량 배달된 스파클링 워터를 집 안으로 옮기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신나게 뽑아먹고 있겠지! 엄청 좋았을 거 같은데!"
나의 입에서는 아쉬움을 담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8년이 지나서야,
그때 시어머님 선택을 따르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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