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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May 01. 2023

디스 이즈 스파르타 여행

제주도가 관광지긴 한데...

"딸아 일어났니? 나가야지!"

"여보 일어나야지 우리는 준비 끝났어"

"음...? 몇 신데?"

"그게 중요해 빨리 준비해!! 얼른 장모님 기다리잖아"


눈을 뜨지 못한 채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성화에 억지로 고양이 세수를 하는데 거울에 비친 시계가 새벽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누가 이 시간에 일어나서...라는 말을 하려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엄마와 남편은 이미 준비를 마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성을 가진 두 명의 남녀가 그들은 마치 자신의 쏘울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른 성을 가진 나에게 그들의  쏘울을 억지로 불어넣는 것처럼 나를 보챘다. 눈도 떠지지 않는 나를 해도 뜨지 않은 산책길로 끌고 나오며 나에게 키가 주니가 오늘의 일정을 읊었다.


"자! 우리 원정대는 오늘 오전 9시에 릴로라는 레스토랑에 가서 아침을 먹고, 그다음에는 빛의 벙커를 가서 폴세잔 그림을 보고 다시 자전거를 빌려서 김녕 해수욕장에서 1시간가량 탄 다음에 다시 톰톰 카레집에 가서 카레를 먹고 사려니 숲길을 걷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룸서비스를 먹으면 오늘 일정이 끝이 납니다. 그러니까 일단 아침을 먹으러 가는 길은 대략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고 대기가 있을 수도 있으니 가능한 산책은 빨리 끝나고 출발해야 해야 합니다."


엄마는 키가 주니가 읊어주는 일정에 매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나는 마치 하루 일정이 아닌 3일 같은 빠듯한 일정에 반항의 깃발을 올렸다.


"아니!! 그건 아니지 그건 하루 일정이 아닌 거 같은데.. 그리고 나 자전거 안 탄 지 6년이 넘었는데 못 탈 수도 있어"

"자전거는 못 빼 장모님의 버켓리스트야!"

"그럼 사려니 숲길이라도 빼줘"

"그것도 안돼 그건 내 버켓 리스트야!"

"내 버켓 리스트는.. 나는 여유롭게 호텔에서 책을 읽으면서 마사지받는 건데.."

그 말에 엄마가 조심스레 말했다.

"찌롱아... 제주도는 휴양지가 아니란다"

"그럼?"

"관광지지.."

"그럼 그럼 장모님 옳소"

마치 두 명의 관광지 깡패에게 억지로 두 팔을 붙들려 끌려다니는 여행을 하게 될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어느 누가 새벽 4시 30에 일어나 오후 6시에 숙소로 돌아온단 말인가.. 내 버킷리스트만 안 채워주고 그들의 욕심은 가득 채운 일정들이었다. 호텔에 다시 들어와 오늘의 일정을 예고라도 하는 듯 키가 주니는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라 마치 분필을 가득 칠한 얼굴로 나와서 외쳤다.


제군들 오늘 일정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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