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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Jul 04. 2023

무라카미 하루키 따라 하기

티셔츠 컬렉터부터 하면 안 될까?

사람이 많은 곳이 싫다.

지루성 피부염이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면 안 된다.

방금 밥을 먹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뽑아서 언년이 언니에게 보내봤지만, 그녀는 일언대꾸도 없이 6시 50분까지 너네 집으로 갈게라는 말 외에 어떤 답장도 하지 않았다. 날이 더워서 비가 올 것 같아서 조금 있다가 뛰어야 하는 내 모든 순간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6시 50분이 되자마자 영락없이 현관문 입차 소리가 환청처럼 울렸다.


"언년이 언니가 입차하였습니다.
게으른이여
당장 지하로 내려오세요"


 사건의 발단은 6년 넘게 혼자 뛰어온 언니가 사람들과 같이 뛰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 열망을 알고 있던 필라테스 선생님은 자신이 속한 러닝 크루가 오늘 저녁 라베니체에서 러닝크루 행사를 하기로 했다는 미끼를 언니에게 던졌다." 언년이 언니, 오늘 행사에 오실 거죠? 오늘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많이 안 올 것 같아요.." "아... 네.. 그럼요…“


하지만 혼자 참석하기 어색했던 언년이 언니는 집에만 있는 히끼꼬모리 동생을 끌어내리라 결심하게 되었고, 자신은 선생님한테 그런 말 못 들었다고 완강히 버티던 나를 억지로 끌고 가기 위해 그 집 지하 주차장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러닝화도 없다고 외치는 나를 언년이 언니는 콧방귀를 뀌며 앞으로 밀면서 당당히 걸어 나갔다. 오랜만에 마신 바깥공기는 오후 7시임에도 불구하고 습한 공기가 내 몸에 물파스를 바른 듯이 착착 감겼고, 멀리서 보이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니 숨이 헉하고 막혀왔다.


대충 참가하는 척하고 뒤로 돌아서는데... 호오라고 외치는 듯한 필라테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아니.. 회원님도 오셨어요?" 아. 뿔. 싸."아니.. 저는 그냥... 구경.. 만""에이.. 걸어도 돼요. 언년이 언니가 아주 큰 대어를 낚아 오셨네요 하하하하" "그렇죠? 하. 하. 하. 하. 대어긴 하네요 덩치가 크니까 “ 그 말을 하곤 언년이 언니는 나를 보고도 한마디 했다.


"그것봐 선생님이 너 와서 엄청 좋아하시잖아 나보고 너를 데려오라고 말 안 하신 거지"


뭐지? 이곳은 다단계인가? 정신없게 몰아치는 자진모리장단과 같이 두 명의 여자가 그렇게 얼쑤 장단을 맞추더니 나를 그 무리 안에 던져 놓았다. 힘들면 걸으세요 라는 말과 함께... 그 무리가 출발이라는 구령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갔고 나도 그들을 따라 걸으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곧 샌드위치가 되어 자의 반 타의 반 뛰게 되었고, 결국 바짝 눌려 제일 끝칸으로 뒤쳐지고 말았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 건지 만나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마다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하하하. 아.. 어... 많이 힘드시죠.. 쉬엄쉬엄 하세요." 창피한 마음에 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뿜어댔다 "하하하.. 제가 오늘 처음 하는 거라..""제가 지루성 피부염이라 얼굴이 금방 빨개져서.." 같이 가기로 했던 언니도 그런 내 얼굴이 창피했는지 어느새 하얀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걸어도 된다며 다 어디 갔어!!" 걸어도 되긴 했지만 아무도 걷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건 이제 몇 킬로 안 남았다는 것과 내 얼굴을 보면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되었던 응원의 소리들이었다. "푸하하하... 파이팅""아이고.. 저런 파이팅""저기까지만.. 파이팅" 간신히 도착한 결승 지점에 들어서자 데스크에 모여 있던 사람들 사이에 있던 언년이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얼굴 완전 토마토야! 물에 젖은 토마토 하하하하하 완주한 게 용하다.."

"우이씨"


 나와는 다르게 3킬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서 있는 러닝크루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씁쓸한 패배감이 느껴졌다. 그런 내 모습을 눈치챈 건지 언년이 언니는 다가와 물었다.


"야 작가가 되려면 달리기는 기본 아니냐? 쯧쯧"

"그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고.. 나는 달리기를 하기 전에 티셔츠 먼저 모을래.. 아니면 클래식을 들을래.."

"무슨 소리야 달리기 먼저 해야지 담주부터 나랑 같이 이 모임에 나오자"

"싫어 혼자가! 왜 언니 MBTI E(외향형)이라며 혼자 가 나는 못해"

"아 맞아 나 E 맞아 5번 했는데 E 나왔어 그래도 혼자는 못해.."


뭐야? 거짓말 테스트 한 거야 뭐야 아니면 E가 이기적일 때 이인가?라고 말하려다가, 언년이 언니의 너는 나와 무조건 가게 될 거라는 확신에 찬 얼굴을 보고 입을 뻐끔거리다가 말았다. 아... 앞으로 이기적인에 E 언니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예고 없이 찾아와 다시 나를 끌고 나가겠구나. 그래도 대비는 해야겠군. 나는 키가주니를 불렀다.


"키가주니 나 러닝화를 사야겠어 당장 출발해"


그렇게 긍정적인 나는 러닝화 한 켤레를 가슴에 품고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한 발짝 다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신을지 신지 않을지 모르지만 러닝화를 먼저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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