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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Aug 23. 2023

여권도 만료! 남편 인생도 만료!

얼굴 닮았다는 말이 더 싫어


  얼마 전 언년이 언니와 엄마와 함께 생애 첫 프랑스를 가기로 계획을 하고, 여권을 찾았는데 여권은 이미 2015년에 이미 만료되어 있었다.


  어쩌면 전쟁이 나도 여권을 쓸 수 없어 비행기도 타지 못한 채 공항에서 인생이 완료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아찔해져 서둘러 인터넷으로 여권 신청을 했는데…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키가주니는 음흉하게 웃으며 자기도 여권을 바꿔야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너는 여권 언제까진데?라고 묻자 자신의 여권을 말없이 들이밀었다. 2025년… 아니 아직 기간이 남았는데..라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만들면 자신도 만들어야 한다며 사전 신청 버튼을 누르고 사라졌다.


‘아…. 이젠 샘이 낼 게 없어서… 여권 만드는 것도 샘을 내는구나’


두통이 올라왔다. 오 마이 두통!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녔다는 데 있다. 여권이 준비되었다며 시청으로 찾으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 키가 주니와 함께 시청을 갔는데 사전 신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자가 이미 10명이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숫자에 한숨을 쉬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한 사람이 가족 여권을 만드는지 여러 권의 여권을 들고 확인하는 터에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날씨는 어찌나 덥던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겨우 키가주니의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더워서 더 이상 못 참겠다며 남편이 들고 있던 번호표를 빼앗아서 먼저 창구로 내달렸다. 눈 뜨고 싸대기를 맞은 것 같은 남편의 얼굴을 뒤로하고 여권 창구에 섰는데 지문 스캐너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거 벌써부터 쉽지 않겠는데..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도 자동 출입국 등록을 할 때도 지문이 흐릿해 열손가락을 다 스캔하고서 안 되겠다며 엄지 척 두 손가락을 등록한 나였다. 심지어 그런 절차가 번거로워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릴까 신줏단지처럼 모셨더니 여권 담당자에게 건넨 2012년도에 발행된 주민등록증에 찍힌 사진은 이미 유령처럼 희미했다


그에겐 나는 지문도 없고 주민등록증에 사진도 유령 같은 미래의 범법자처럼 비쳤던 걸까? 그는 내 열 손가락을 모두 찍고 본인이 맞는지 확인한다며 남편이름과 생일, 내 이름 내 본적 아버지 어머니 이름까지 묻고 나서야 신규 여권을 건네주었다. 내향형인 나에게 아찔한 시간이었지만 정작 번호표를 뺏겨버린 남편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여권을 받고 오는 나에게 남편은 크게 소리쳤다


“아이고 진상 고객님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또 지문이 또 안 찍혔어요?”

“고마해라 짜잉 나게 하지 말고”

“아니 남들은 두 손가락만 찍고 오는데 왜 열손가락 다 찍고 오셨써요?”

“……. “

앞에서 깐죽대다가 분명 한 대 맞았을 남편은 다행히 창구에서 부름을 받고 여권을 받으러 나갔다.


몇 분뒤 남편은 두 손가락만 찍고 간단한 자기소개만 하고 돌아오게 되면서 또 굳이 아까는 자기 아내였다며 의심 안 하셔도 된다는 말까지 하고 돌아오면서 내 성질을 돋우고 말았다.

‘나를 왜 의심하지 말라고 말했니?
곧 의심이 확신이 될 줄도 모르는데…쯧쯧’


얼굴이 굳어진 나를 보며 자신은 다 나를 위해 오래 기다리던 사람들이 나에게 욕 못하게 일부러 그렇게 소리친 거라고 정말 멋진 남편이지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조용히 남편의 주둥이를 잡고 차로 끌고 가 속삭였다.


“오늘부터 내 구 여권은 만료, 내 구 남편의 인생도 만료다! 이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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