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버 얌
이 가게를 처음 알게 된 건, 산책을 하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한참 몹쓸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내가 걷는 길에는 맛을 모르는 가게는 없어야 한다는 호기심병. 그런데 산책을 하다 우연히 새로 생긴 가게가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런 저와 10년 넘게 산 남편은 지나면서 앞으로 자신 앞에 펼쳐질 운명에 대해서 예감했다고 합니다.
조만간 제 팔에 붙들려, 저 가게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되었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달리다가 빠져버린 육수를 다시 채우는 날. 우리는 '포에버 얌'이라고 귀엽게 쓰여 있는 쌀국수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자동문이 스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습니다. 고요한 듯 평온한 가게. 아마도 오후 휴게시간이 끝나고 온 저희가 첫 손님인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발소리에 화들짝 놀란 여자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여자 사장님은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죠.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 이렇게 쉬는 시간은 달콤해요."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러웠는지. 어쩌면 저는 그때부터 여자 사장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갑자기 난센스 문제를 내도 능청스럽게 기다렸다는 듯이 문제의 답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이상하죠? 처음 만난 사장님인데 말이죠. 정이 가다니. 그리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여자 사장님의 행동은 물이 흐르듯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다만 가끔씩 눈을 마주치면 여자 사장님의 어깨가 들썩 거리는 것만 빼고. 분명 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이 사람은 외향형이라는 걸. 여자 사장님은 저희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낯을 가리는 저는 모르는 체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끝이 났습니다. 아마 다시 가게에서 사장님을 만났다면 저는 또 쌀국수만 먹고 왔을 겁니다.
그런데 우연히 여자 사장님을 다시 만난 건 가게가 아닌 스레드에서였습니다. 제가 남편이 사람들 얼굴 기억을 못 해서 힘들다고 했더니. 포에버 얌 여자 사장님이 저도 진짜 사람 얼굴 기억 못 한다고라고 댓글을 달았죠.
또 어느 날은 우리 남편은 너무 말이 많아서 내가 피곤하다고 올렸는데, 어? 저희 남편도 저한테도 똑같이 그런 말을 해요.라고 댓글을 남기시더라고요.
그렇게 저희는 점점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제 남편에 저는 사장님의 남편에 빙의해서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게 되었죠.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맛집을 하는 사장님이 친구라니? 멋지지 않나요? 저도 물론 다른 손님처럼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지만, 내 친구는 쌀국수 맛집 사장님이야.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포에버 얌에 단골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노력해서 성골이 되어야겠어요. 여러분도 이번 기회에 같이 성골이 되어 보시겠어요?
포에버 얌에서 쌀국수를 시킬 때는
고수는 필요 없습니다.
사장님 손이 고수니까요.
서울에서 바로 베트남으로 떠나는 법
포에버 얌
손님: 기사님, 베트남 맛집 주소입니다. 여기로 가 주세요.
경기도 김포시 김포한강1로 97번 길 10-9 1층 101호
기사: 베트남 맛집인데, 왜 김포로 가세요?
손님: 이유는 간단합니다. 베트남보다 더 맛있거든요.
여름휴가 아직 못 가셨다고요?
베트남 비행기표 없으시다고요?
괜찮습니다.
네비만 찍으시면 오늘 저녁 바로 베트남 도착입니다.
이름은 포에버 얌.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여권 필요 없는 여행'이 시작됩니다.
<같이 있어도 외로운 섬 하나>
-소설
"부산 남자가 무뚝뚝한 건 알지만, 그래도 조금 자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큰 눈에서 맺힌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저는 당황했습니다. 다음 소설의 주제가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꾼이었기에, 저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찾아왔거든요. 매일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포에버 얌 사장님. 제가 며칠 그녀를 지켜본 결과. 그녀는 사랑꾼이 분명했거든요.
남자 사장님이 눈썹 문신을 할 때도 같이 가고, 옷깃이 조금이라도 접혀 있으면 직접 펴주는 자상한 여자였으니까요. 여자 사장님의 시선은 항상 남자 사장님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래서 저도 조심스레 인터뷰를 요청했던 건데,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여자 사장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울음을 참으려고 일자가 된 입술 미간에 그어진 선들. 붉게 달아오른 볼. 저는 그 표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외로움이 묻어난 표정이었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10년 전, 그땐 저는 외딴섬에 홀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도 없고, 마트는 심지어 버스를 타고 가야 했으니까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티브이를 보거나, 요리를 하고 남편을 하루 종일 기다리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더 집착을 하게 되었죠. 수시로 전화를 했어요. 지금 어디냐? 집에 언제 오냐? 회식은 무슨 회식. 어떤 면에서는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나는 내가 올라갈 가지가 다 부러지고 없는데, 남편은 제가 모르는 곳까지 올라가 벌써 한참을 멀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집에 오면 밥을 먹고 하루 종일 말을 해서 피곤하다고 등을 돌리고 자는 남편의 등을 보며 저는 혼잣말을 했어요.
'나는 하루 종일 아무 말도 못 했는데.'
용기 내 집에서 나가봤자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건 초록색 풀밭뿐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제 마음은 옅게 부는 바람에 날리는 모래알처럼 무너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간절히 필요했습니다. 같이 그 시간에 무뎌지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언니와 통화를 하는데 대뜸 언니에게 그러더라고요.
"누나, 요즘 들어 선희가 저에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요. 선희가 차라리 취미를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넋두리처럼 언니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저에게 제가 마치 남편에게 귀찮은 물건이 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을 위해 포기한 시간을 손바닥에 올려 뭉게 버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 표정이 딱 얌 여사장님과 같았습니다. 티브이 속에 제 얼굴이 비쳤거든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그런 표정. 그 기억이 떠올라, 저는 말없이 얌 사장님의 어깨를 감쌌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을 했죠.
"얌 사장님, 괜찮아요. 다른 사람이 몰라도, 나는 알아요. 얌 여사장님이 얼마나 힘든지. 남편과 함께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걸 인내하고 있는지."
외로움도 결국 소금이 물에 닿으면 사라지 듯, 녹을 수 있다는 걸 제가 김포에서 깨달았거든요.
누군가가 건네는 한 마디. 그냥 이유 없이 그래 네가 하는 말이 다 맞아.라고 말 해주는 버팀목이 있다면 버틸 수 있다는 걸 말이죠.
그래서 그 시간을 조금 먼저 겪은 제가 얌 여사장님에게는 당신의 편이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과거에 저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말이죠. 소설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과거에 저를 만나게 되다니.
참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래 본 친구도 아닌데 서로 울먹인 게 멋쩍어 남편이 괜히 남의 편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라며. 웃으며 가게를 나왔습니다. 이제는 웃고 있는 여자 사장님에게 울다가 웃으면 큰일 난다는 말을 남긴 채 말이죠.
터벅터벅 걷다 보니 붉은 노을이 발끝에 닿았습니다
. 그래서 무심코 하늘을 올려 보게 되었죠. 그러다 문뜩 잉꼬부부가 별거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포에버 얌 부부처럼 한 사람이 반짝이며 빛을 낼 때 다른 한 사람은 묵묵히 서서 어둠이 되어주고 있는 게 부부가 아닐까?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괜히 집에 있는 남편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받지 않더군요. 그의 눈은 아직 캄캄한 밤인가 봅니다. 얼른 달려가서 눈이 번쩍 빛이 나게 만들어야겠습니다. 어두운 하늘을 빛나는 저 노을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