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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Oct 31. 2023

명작 다시 읽기 - 엘리펀트 맨

괴물 같은 외형을 가졌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인간다웠던 남자의 이야기


1.


 영화는 영국에 실존했던 인물 '조셉 메릭', 일명 ‘엘리펀트 맨’이라고 불린 사내의 일대기를 그렸다. 영화 속의 조셉은 ‘존 메릭’이라 불리고 신경섬유종증을 앓는 중증 장애인으로, 온몸에 돋아난 종양으로 인해 말은커녕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남자로 등장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악덕 서커스 사장에게 거두어져 프릭쇼의 배우로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런 존 메릭에게도 한 줄기 희망이 비치니, 바로 외과의사 ‘프레드릭 트레비스’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동정을 느낀다. 어느 날 심각한 학대를 당해 위급한 상황에 놓인 메릭의 소식을 듣게 된 트레비스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서커스 단장에게서 존 메릭을 뺏어온다.


 트레비스는 메릭이 당연히 말을 하지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백치라고 생각-메릭 역시 그가 백치인 것처럼 연기를-했다. 하지만 한 사건을 통해 존 메릭이 사실은 말을 알아듣고, 할 줄도 알며 사실 그 누구보다 맑은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점차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2.


 메릭이 백치가 아니고 정신적인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편 23장을 혼자 읊조리는 장면으로 표현한다.


 시편 23장은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이 내 곁에 계시기에 나는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이었을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 메릭이 힘겹게 숨을 쉬어가며 시편을 읊는 장면은 40년이 넘은 흑백영화지만 큰 감정의 울림을 선사한다.


 이후 메릭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스스로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를 괴물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대우해 준 첫 번째 사람은 트레비스의 아내였다. 그녀의 배려에 큰 감동받은 메릭은 트레비스와 그의 아내에게 자신의 속 마음을 모두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가 트레비스의 집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것은 쓰레기통에서 박스와 종이들을 가지고 와서, 그것들을 자르고 접고 붙여서 성당을 만드는 것이었다.


 메릭은 기괴한 생김새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조그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성당의 첨탑을 보고 성당의 나머지 구조물을 상상해서 자신만의 성당을 쌓아간다. 그것은 마침내 자신에게 은총과 자애를 보여주신 하느님에 대한 봉헌의 의미다.


 가톨릭 신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느님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 쉽게는 헌금부터 시작해서 성당이나 사회를 위해 자발적 봉사를 하기도 하고, 묵주기도를 비롯한 기도를 하기도 한다.


  메릭은 편치 않은 손으로 투박한 자신만의 성당 미니어처를 만든다. 메릭이 자신만의 성당을 만드는 것은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이자 그의 신앙, 그리고 메릭 자신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에게 다시 한번 큰 시련이 닥칠 때, 그가 만든 성당은 그와 같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런 역경의 시간이 지나 다시 그에게 평화가 찾아왔을 때, 그의 성당은 말끔하게 그의 손에 의해 재건된다.


 비로소 영화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의 성당은 완성되고 하느님에 대한 그의 봉헌이 비로소 마무리되게 된다. 메릭은 서툰 글씨로 성당에 자신의 서명을 남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등을 대고 잠을 잠으로서–종양으로 인해 그는 항상 앉은 상태에서 잠을 잤다. 누워서 자면 종양이 그의 폐와 심장을 압박해서 숨을 쉬지 못하게 때문에–그는 영원한 안식을 택한다.


3.


 영화는 ‘존 메릭’이 괴상한 외모를 가졌을 뿐 사실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신앙심만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가 예술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으로 메릭의 내적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메릭이 자신의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영국 사교계를 주름잡는 유명 배우, ‘켄들 부인’은 "존 메릭은 비록 몸은 흉측하지만 마음만은 아름답고 글을 읽고 쓰며 품위가 있다"는 기사를 읽고 그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 결국 켄들 부인은 메릭을 만나게 되고 한눈에 흉측한 외모에 가려진 그의 아름다운 영혼을 읽어낸다. 그리고 그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파트를 공유하고 그에게 키스를 함으로써 그의 친구가 된다.


 메릭이 예술적인 식견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교계의 대스타 켄들부인과 그가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 일약 영국의 사교계 스타로 떠오른 메릭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친구라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유명인 메릭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 할 뿐, 그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 영화 속 프릭쇼를 즐기는 대중들과 영국 귀족들은 메릭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그가 가진 이미지를 원한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진정한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에는 일맥상통한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트레비스는 메릭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트레비스는 그에게 한 가지 큰 선물을 해주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켄들 부인이 운영하는 극장에 메릭을 데려가는 것이다. 여태 메릭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연극을 보게 되는 메릭.


 메릭의 눈으로 보는 연극은 마치 여태까지 메릭이 꾸어왔던 꿈처럼 너무나도 아름답게 비친다. 연극의 모든 씬에 진심으로 감동하고 전율하는 메릭과, 기계적이고 딱딱하게 연극을 보는 관객들을 대비시키면서 한 번 더 메릭의 예술성을 강조한다.


 연극의 막이 내리고 켄들부인은 사람들에게 메릭을 소개한다. 메릭은 여태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알기에, 다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지만 친구들의 용기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관중들의 박수를 받는다. 극장 안은 메릭에 대한 박수로 가득 찬다. 예전과 같은 괄시나 경악, 호기심과 같은 동정 따윈 없다. 메릭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인정하는 박수였다. 환영과 격려, 그리고 연민이 담긴 박수였다.


 연극을 보고 온 뒤 메릭은 트레비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위에 말했듯 영원한 꿈 속에서 사는 것을 선택한다. 메릭의 눈에 비친 켄들 부인의 연극과 같은 꿈 속에서.


4.


 영화 속의 존 메릭은 우리에게 신앙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거리를 준다. 그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그의 삶은 무너졌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은 자신의 절망스러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버팀목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은 자신의 끔찍한 외모 속의 아름다운 영혼을 밖으로 드러내게 해주는 창과 같았다.


 마침내 신앙와 예술을 매개로 메릭이 대중들에게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인정을 받았을 때, 그는 미련 없이 잠을 통한 죽음을 선택한다. 하느님에 대한 과업이 끝이 났고, 여태 꿈꾸어 왔던 연극을 극장에서 보았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의 따듯한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자신이 치료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가장 행복할 때 자신이 정말로 원했던 것을 선택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등을 대고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이었다.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시대를 따라잡지 못한다 하더라도 종교와 예술이 아직 우리들에게 필요한 이유를 영화는 메릭의 일대기를 통해 이야기한다.


 유행이 워낙 빠르게 바뀌고 삶이 빡빡해지면서 현실적인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추상적인 가치를 가진 것들이 우리의 일상에서 점점 멀어지는 추세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술을 사랑해야 하고, 종교에 대한 믿음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존중은 필요하다. 예술은 우리의 삶을 조금 더 아름답고 가치가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고, 종교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희망과 위로를 담은 따듯한 포옹을 선물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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