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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Oct 31. 2023

명작 다시 읽기 - 킬링디어

고전 그리스 비극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명작


1.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그리스의 거장 ‘요르고스 란티모스’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재 핫한, 이른바 예술영화를 찍는 감독 중 한 명이고 특히 이 ‘킬링 디어’로 수많은 시네필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영화는 고전 그리스신화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아가멤논’의 이야기, ‘성스러운 사슴 죽이기’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왔다.


 이 이야기를 어느정도 알아야 영화를 조금 더 즐길 수 있는데 대략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트로이 전쟁을 나가기 전에 아가멤논은 아르테미스가 아끼는 사슴을 죽여버린다. 아르테미스의 분노로 폭풍우가 몰아쳐 아가멤논은 전쟁을 나갈 수 없게되고, 그는 그녀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전쟁을 나가려면 그의 딸을 죽여야 한다는 신탁을 받는다.


 고민을 하던 아가멤논은 그의 딸을 죽이고(라곤 했지만 아르테미스가 그녀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사제로 삼음) 전쟁을 나가게되고, 그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어마어마한 명성을 얻고 돌아온다. 하지만 아가멤논의 아내인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자신의 딸을 죽인 아가멤논을 죽이고, 그녀는 또한 그녀의 아들인 ‘오레스테스’에게 죽임을 당한다.


 사슴 하나를 죽임으로써 아버지가 딸을 죽이고,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아들이 어머니를 죽인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2.


 그리스 신화를 관통하는 몇 가지 메시지 중 하나는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그들이 받은 신탁, 즉 운명을 절대 거스를 수 없으며 그것은 비단 인간 뿐 아니라 신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신들 가운데 하나인 농경의 신 크로노스는 아들로 인해 자신이 신의 권좌에서 내려갈 것이라는 신탁을 들었고, 그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아이가 태어날때마다 그 아이들을 잡아먹었지만 결국 아들인 제우스에게 패배해, 신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오이디푸스는 갓난아기일 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들었고, 그것을 두려워한 부모가 그를 죽이라고 신하에게 명하지만 신하는 아이가 불쌍해 차마 죽이지 못하고 나무에 오이디푸스를 걸어둔다. 그리고 때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던 다른 왕국의 왕과 왕비가 갓난아기인 오이디푸스를 거둬들이게 되고 오이디푸스는 성장하여 자신의 친 아버지를 죽이고, 친 어머니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게된다.


3.


 이 영화 역시 그런 거스를 수 없는 그리스 신화적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만 밑도 끝도 없이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 저주를 내리는 신화 와는 달리, 이 영화 속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인 ‘마틴’은 최소한 그에게 두 가지의 선택권을 준다.


 스티븐은 자신의 실수로-수술을 들어가기 전 마신 술로 인해-마틴의 아버지를 죽이게 된다. 마틴은 그리스신화 속의 ‘운명’을 은유하는 존재이다. 스티븐은 자신의 운명을 바꿔보기 위해 그에게 많은 선물과 관심을 제공한다.


 마틴이 원하는 것은 스티븐이 빼앗아간 그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즉, 스티븐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으니 당신이 자신의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의 남편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스티븐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저 비싸지만 오래되고 싫증이 난 시계를 그에게 주고, 기계적인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이 그의 노력의 최대치다. 그리고 스티븐은 생각한다. “이만큼 해줬으면 됐지, 뭘 더 바래?”


 마틴을 점점 멀리하는 스티븐, 그러자 갑자기 스티븐의 아들인 밥이 걷지 못하게 되고 이윽고 그의 딸 킴 또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다. 원인불명의 병으로 걷지 못하게 된 두 자식을 입원 시키고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스티븐과 그의 아내 앞에 마틴이 병문안을 온다. 그리고 그는 스티븐을 불러내 스위스제 나이프를 선물하면서 “어서 가족 중 한명을 선택해 너의 손으로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죽게 될 것.”이라는 최후의 저주이자 신탁을 그에게 내린다.


 스티븐과 애나는 애써 무시하지만 점점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그는 결국 가족 중 한 명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4.


 ‘킬링 디어’는 교훈적 메시지를 크게 담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구원은 커녕 찝찝한 상태로 영화가 끝난다. 뭐, 굳이 숙제식 감상문처럼 교훈을 써야한다면 ‘죄지으면 언젠가는 크게 돌아오니까 죄 짓고 살지 말자’라는 이야기겠지만 란티모스 감독은 그런 영화의 교훈적 메시지보다는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또는 각색 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 듯 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스티븐’이다. 스티븐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아내인 애나를 제외하고 하지만 그녀조차 극 후반부가 되면 운명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자신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들에게 닥친 괴상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운명을 마치 숙명인 양 받아들이는 정도로 까지 보인다.


 특히 스티븐의 자식인 밥과 킴은 설령 마틴이 킴에게 그들이 죽을 것임을, 그것이 스티븐의 과오로 자신들이 고통을 겪고있다는 것을 말해주었고, 그것을 동생인 밥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당연한 일인냥 받아들인다. 가족 중 단 한 명만 죽으면 된다는 것까지 알고있고, 생사여탈권은 아버지에게 있는 것까지 알고 있기에 가족들은 저마다의 생존 전략을 펼친다.


 밥은 스티븐에게 “사실 나는 안과의사가 아니라 아버지 같은 심장외과의사가 되고 싶다, 머리도 아빠 말대로 잘랐더니 너무 시원하고 좋다. 미리 할걸”이라 말하고,


 킴은 “만약에 내가 죽으면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일거고 자신의 목숨으로 가족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왔으니 아버지가 내 목숨을 거두는 것은 섭리일 것”이라며 자신들을 어필하고


 극 후반에는 애나조차 죽음을 피하기 위해 “아이들을 죽여요, 당신이 원한다면 아직 우리는 아이를 만들 수 있으니까”라고 그에게 이야기하고, 또 스티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가 선호하는, 마치 전신 마취가 된 환자와 같은 경직된 자세를 취하며 그를 유혹한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주인공을 제외한 주변 인물들의 묘사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신화 속에서는 주인공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주인공이 행동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지 그의 딸이나 아들, 아내가 처한 상황이나 그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란티모스의 시선도 그와 같다. 그는 철저히 스티븐의 고뇌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의 가족들을 도구로 삼았을 뿐, 가족들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이나 연민은 전혀 없어보인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고, 대사조차도 오래된 연극의 대본을 읽는 것 마냥 차갑고 딱딱하다.


 5.


 신화와는 달리 스티븐은 자신의 가족 중 누구를 죽일 것인지 선택하지 않는다. 영화는 스티븐을 기고만장한, 아주 오만한 인간으로 그려낸다. 인간의 장기 중 가장 치명적이고 중요한 심장을 다루는 흉부외과의에, 그가 주변인들을 대하는 태도도 아주 신사적이지만 그 마저도 마치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위선자적 모습을 보인다.


 결국 아내인 애나가 왜 자신의 가족에 이런 비극이 찾아왔는지를 알게되고나서 그를 취조하듯 캐물을때도 그는 "외과의는 절대 실수를 할 수가 없어, 마취의의 잘못이야. 마취의는 사람을 죽이지만 외과의는 절대 실수를 하지 않아."라며 그의 실수를 절대적으로 부정한다.


 스스로 고결하다 느끼고 능력있으며 또한 우월하다 생각하는 스티븐도 결국 가족 중 하나를 죽여야 한다는 극단의 선택을 하지 못하고 눈을 가린채 빙글빙글 돌다가 랜덤으로 총을 발사하는 방식으로 그에게 내려진 저주이자 운명을 해결하려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영화는 스스로를 신, 또는 위대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스티븐이 그 오만으로 인해 벌을 받고 끝내 자신도 남들과 다를바 없는 그냥 인간임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겠다.


6.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면 ‘뭐야, 이거 결말이 왜 이렇게 찝찝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쨋든 남은 스티븐의 가족들은 멀쩡해졌지만 마틴을 보고 그들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식당을 뜬다. 그들의 표정은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아련함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가득하다.


 감독의 의도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마주한 인간의 고뇌, 그리고 그 끝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고국이자, 고향이자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들어왔던 그리스의 신화적 요소와 그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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