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기에 오히려 가득 찰 수 있었던 것
다시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기록적인 폭염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올해의 여름은 선선한 편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올 가을은 꽤나 쌀쌀하네요. 벌써 새벽엔 온도계가 영하로 떨어지고, 낮에도 반팔을 입기엔 많이 추워졌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한파에 저희 동네에는 신기한 풍경이 만들었습니다. 다른 곳은 이미 단풍이 예쁘게 달아올랐는데 저희 집 근처는 이제서야 단풍이 물들어가고 있거든요. 좁쌀비 사이에서 이제서야 붉게 익어가는 단풍을 보다 보니,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겨울을 어떻게든 내쫓으려고 늦가을이 허겁지겁 뛰어 온 것 같네요. 묘한 기분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가을, 특히나 ‘늦가을’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쓸쓸함이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덕분에 미루고 또 미뤄두었던 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김태용 감독님의 영화, 만추(晚秋,Late autumn, 2011)이지요.
영화는 만추, 늦을 만(晚) 자를 씁니다.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2013~4년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영화감독 김태용 님과 배우 탕웨이 님이 결혼한다는 뉴스를 보고, ‘만추’라는 영화를 알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만추라는 제목을 듣고 당연히 찰 만(滿) 자를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땅’이라는 속어 때문에 ‘만’ 자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가득 차다’라는 의미를 떠올린 것이죠.
‘김태용 감독이 탕웨이와 이 영화 때문에 연애를 시작했을 텐데, 어떤 영화일까?’하는 궁금증이 들어 네이버에 영화제목을 검색했습니다. 그저 네이버 영화란에 올라온 짤막한 리뷰들과 영화 스틸컷들을 훑어보면서, 아직 보지도 않은 영화의 빈 공간을 제 멋대로 채웠습니다. ‘늦은 가을’이 아닌 ‘가득 찬 가을’이라고 생각을 하면서요.
시간이 흘러 흘러 거의 10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영화가 제게 찾아왔네요. 아니, 제가 영화에게 찾아갔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요.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탕웨이 님이 분한 ‘애나’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죽이고 감옥에 갔다가, 어머니의 장례 때문에 72시간의 단기 출소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인 제비-뭐라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흔히 말하는 호빠 같은…-인 현빈 님이 분한 ‘훈’을 만나게 되죠. 그리고 둘의 짧은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영화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애나의 해방, 즉 그녀의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애나는 남편을 죽였습니다. 남편을 죽인 이유는 남편이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의심이 커져서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정폭력 속에서 애나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남편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 이유는 그녀의 옛 남자친구인 ‘왕징’이 그녀에게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탕웨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던 왕징이 갑자기 애나에게 돌아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둘 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자.”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녀를 뒤흔든 왕징의 이기심 때문에 그녀의 삶이 송두리째로 망가져 버린 것이죠.
훈은 적극적으로 애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애나는 자신의 신분상, 또 과거의 대한 아픔으로 훈의 애정표현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의 적극적인 애정공세와 시애틀 여행을 통해서 그녀 역시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영화에서 훈은 철저히 애나의 구원을 위한 존재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영화의 시선은 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마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킬링디어’ 속의 스티븐의 가족들처럼 말이죠.
물론 훈에게도 나름의 서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서사는 원작 ‘만추’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만들어놓은 이야기일 뿐, 그 부분을 들어내도 영화 진행에는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영화는 오로지 ‘그가 하는 행동이 애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심이 있을 뿐이지요.
애나가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앓아야 했던 왕징에 대한 분노, 과거에 대한 후회들이 훈이 일으킨 소동으로 한 번에 터지게 됩니다. 그리고 애나는 "왜 남의 것을 함부로 썼냐? 왜 사과를 하지 않냐."고 따지듯 왕징에게 묻고, 그에게 표면적이나마 사과를 받았을 때 비로소 애나는 과거의 속박에서 풀려나 구원을 받게 됩니다.
훈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되찾은 애나는 출소를 하게 되고, 반대로 훈은 정황상 살인죄로 감옥에서 복역 중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애나는 그들이 헤어진 마지막 장소의 카페에서 훈을 기다립니다.
“Hi, It’s been a long time.”
훈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애나가 이번에는 훈을 구원해 줄 차례라는 뜻일 수도, 소나기처럼 짧지만 그녀의 마음을 흠뻑 적시고 지나간 훈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는 것일 수도 있는 묘한 마무리입니다. 아무래도 후자의 의미를 포함한 전자에 조금 더 가깝겠지요.
영화 속 애나는 선한 사람이기에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게 언제, 어떤 식으로 찾아올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가슴속의 응어리를 모두 풀어낸 애나가 훈에게 마음을 연 일련의 씬들을 보면서, 오히려 우리는 '그녀에게 찾아온 구원이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행하게도 애나에게는 끔찍한 일이 닥쳤고 그로 인해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내내 애나는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에게 넌지시 알려줍니다. 착하고 선한 사람이기에 수많은 자책과 스스로에 대한 분노, 후회를 했겠지요.
타인을 미워하기보다 그렇게 자신을 삭혀내는 시간이 있었기에 오히려 그녀는 진정한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사색하고 지난 일을 반성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훈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설사 만났더라도 그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겠지요.
남을 미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반성하고 내려놓았기에, 비로소 과거로부터의 해방과 진정한 사랑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늦었기에(晚) 오히려 가득 찰 수(滿) 있었던 것,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만추가 아닐까 합니다.
가을은 짧습니다. 잠시만 한눈을 팔면 단풍은 떨어지고, 떨어진 단풍잎은 짓이겨져 거무죽죽한 죽이 될 테고, 그러다 보면 눈이 내리는 시린 겨울이 시작되겠죠. 아직 여러분이 가을의 품 속에서 그의 향취를 느낄 수 있을 때, 쓸쓸하지만 마냥 외롭고 슬프지만은 않은 만추, 이 영화 한 편을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