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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Nov 08. 2023

명작 다시 읽기 - 화양연화

과도하게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만들어진 사랑에 대한 완벽한 몽타주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갤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 들어봤을 화양연화. 대다수의 예술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마냥 재미있게 보기는 힘들다. 


 특히 감독인 왕가위가 깔끔하게 정돈된 교과서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서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시간의 흐름이나 장소의 변화를 따라가기도 벅차다.


 하지만 ‘몇 번’ 영화를 보게 되면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왕가위의 실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만든 영화답게 그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또 이야기의 빈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채워가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영화다.


 보편적인 재미를 담은 영화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시간을 들여서 볼수록 깊은 맛이 느껴진다라고 할 수 있겠다.






 "둘 사이는 분명한 거고 누가 먼저냐는 중요치 않죠."


 영화를 짧게 요약해 보자면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게 된 남겨진 두 남녀가 서로 맞바람을 피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의 남겨진 ‘첸 부인’과 ‘차우’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하지만 둘은 각자의 배우자들이 행한 ‘불륜’이라는 행동을 증오하는 동시에 그들의 ‘외도’는 정당하며 자신들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떳떳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한 태도는 둘이 서로 처음 만나 대화를 하는 씬과 자신들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게 되는 씬으로,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둘은 서로의 배우자가 서로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각자가 가지고 있는 넥타이와 핸드백으로 확인을 한다.


 남녀의 욕망을 상징하는 '넥타이'와 '핸드백', 하지만 첸 부인과 차우의 첫 만남은 책으로 시작되었고 그들의 불륜은 ‘무협지 쓰기’라는, 그들의 배우자보다는 다소 고상한 취미로 진행된다.


 주인공 커플의 불륜은 '책'이라는 정신적인 가치로 비유하고, 그들 배우자의 불륜은 넥타이와 핸드백이라는 물욕적인 가치로 비유를 한다.


 이러한 정신과 물욕의 대비로 왕가위는 주인공 커플의 정보를 우리에게 준다. 


 "이들의 사랑은 우리가 아는 그런 불륜처럼 지저분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왕가위는 재미있는 연출을 한 가지 더 보여준다.




 "괜히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 같아요..", "우리야 결백해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죠."


 영화 중반쯤, 둘은 ‘차우’의 방에서 소설을 쓰다가 늦게 들어올 거라던 차우의 집주인이 일찍 집에 들어오는 사고를 맞이한다.



 어쩔 수 없이 방에 갇히게 된 둘. 이틀간 방에 갇힌 첸 부인이 마침내 차우의 방을 나갈 때, 왕가위의 시선은 침대 아래에서 첸 부인이 하이힐을 신는 장면과 그 옆에 놓인 실내화를 응시한다.


 그리고 첸 부인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후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자신의 하이힐을 아파하면서 벗는 것이다.


 왕가위는 굳이 하이힐과 실내화를 포커스 하면서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넌지시 던진다.


 “보셨습니까? 아직 둘은 심리적 장벽이 허물어지지 않았고, 당연히 육체적 관계를 나눈 사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차우가 소설을 쓰기 위한 방을 얻고, 그곳으로 첸 부인을 초대할 때.


 그 방이 위치한 건물의 커튼은 아주 관능적이고 외설적인 짙은 붉은색이며, 마치 붉은 드레스가 흩날리듯 커튼이 펄럭거린다. 그녀가 입고 있는 코트 역시 새빨간 색이다.


 그전까지는 배우자의 불륜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만났고, 그렇게 지내다 둘 사이에 다른 감정이 생겼다는 것을 왕가위는 그 붉디붉은 색감으로 강렬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둘은 ‘자신들은 그들의 배우자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버리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영화는 이렇듯 표현이 직관적이지 못하다. 왕가위는 주인공들의 드러내지 않는 속 마음을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과시적인 카메라 구도, 강렬한 색감, 끈적한 재즈음악과 적절한 소품의 배치를 이용한 '미장센'과 '은유'로 표현한다.


 영화 속의 모든 씬들이 엉성하게 쌓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씬들 속에 숨겨져 있는 미장센과 은유가 시멘트처럼 감정선과 씬들을 연결시킨다.


 결국 영화의 끝에 다 달았을 땐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한 편의 완벽한 '몽타주'영화를 만든다.


 그래서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담고 있는 캐릭터의 감정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면, 영화 속 스토리의 연결성을 느끼기가 어려워서 그냥 '왕가위 화보집' 보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했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화양연화 포스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은 별로 없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닐까…





 "나도 처음엔 당신처럼 생각했죠. 우린 그들과 다르다고. 그런데 틀렸소. 당신을 위해서라도 내가 떠나야 해요. 우리, 미리 이별 연습을 해봅시다."


 사랑이 깊어가지만 결국 주위에서 둘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차우는 첸 부인을 위해 싱가포르로 떠나기로 한다. 남편을 잘 지키라는 말과 함께 떠나는 차우.


 첸 부인은 차우를 보내고 싶어 하지 않지만 결국 그는 싱가포르로 떠난다. 그녀에게 전한 말인지, 독백인지 알 수 없는 ‘티켓(싱가포르로 가는)이 한 장 더 있다면 나와 함께 가시겠소?’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첸 부인은 그에 대한 대답인지, 독백인지 알 수 없는 "나예요, 혹시 나에게 자리가 있다면, 제게 올 건가요?"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시간은 몇 년 후의 싱가포르로 넘어간다.


 싱가포르에서 차우는 방에서 뭔가를 찾다가 지배원에게 ‘무언가’가 없어졌음을 따지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빙긋 웃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온 차우는 재떨이에 남겨진,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를 본다. 첸 부인이 그의 방에 들어왔었고, 그녀는 슬리퍼를 가져가고 담배를 남겨놓았던 것이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다시피 슬리퍼는 둘 사이의 사랑과 추억을 의미한다.


 방에 의도치 않게 갇혔을 때, 첸 부인은 차우 방에 있던 슬리퍼를 신지 않고 굳이 하이힐을 계속 신고 있었다. 아직 둘 사이의 감정을 서로가 확인하지 못했었을 때, 그 슬리퍼는 사용되지 못했다. 


 첸 부인이 싱가포르로 온 것, 그리고 담배를 한 개비 피고 슬리퍼를 굳이 가져간 것은 그들의 사랑과 추억에 대한 완곡한 표시였을 것이다.


 “사랑했고, 보고 싶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기에 당신이 내게 이야기해 준 ‘나의 가정을 잘 지킬게요.’ 그래도, 우리의 추억만은 잊지 않고 간직할게요.” 정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모르죠? 옛날엔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씬이 바뀌고 차우는 직장동료와 식사를 하면서 한 전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밀을 가진 사람은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는 진흙으로 덮어 영원히 봉했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씬은 다시 바뀌고 차우는 캄보디아의 한 버려진 사원으로 간다. 무너진 사원의 벽에 차우는 뭔가를 속삭이고, 그는 떠난다. 그리고 그 자리엔 풀이 돋아났다.


 영화 속 캄보디아의 사원은 더 이상 신자들이 찾아오지 않는, 신을 잃어버린 곳이다. 신자가 없으면 신은 존재할 수 없다.


 신자들이 떠나버린 사원은 겉으로는 화려할지 몰라도 자신의 본래 목적과 의도인 사원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관광지라는 다른 가치로 이용되는 공간이다. 


 차우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삶을 살아가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결국 그녀를 잃어버린 공허한 사람이다.


 차우는 자신처럼 본래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원으로 찾아가 그곳의 내적 공간을 자신의 사랑과 추억으로 채운다. 차우가 사원에 찾아옴으로써, 그리고 자신의 비밀을 고해성사하듯 사원에 뱉어냄으로써 사원에는 다시 신이 깃든다. 


차우의 ‘화양연화’와 같은 추억이 신의 은총을 받아 '새로운 생명'인 ‘풀’으로 환생한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영화는 다시 시간이 흘러 둘이 지냈던 홍콩의 작은 아파트로 돌아온다. 아들을 데리고 온 첸 부인은 원래 살던 곳에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혼란한 홍콩의 정치상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떠났고, 주인아주머니도 곧 떠난다는 이야기를 한다.


 혹시 몰라 옆집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보는 첸 부인과, 요샌 이웃이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고 지낸다는 주인아주머니.


 다시 씬이 바뀌고 이번엔 차우가 자신이 살던 곳에 들러 주인아저씨의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주인은 처음 보는 중년의 남자로 바뀌어있고, 차우는 원래 주인의 연락처를 구하지 못해 발걸음을 돌린다.


 첸 부인이 살던 방문을 지나가면서 차우는 이 집엔 누가 사냐고 남자에게 묻고, 남자는 아들을 데리고 있는 젊은 부인이 산다고 이야기를 한다.


 차우는 집을 지나치면서 벨을 누르지도, 노크를 하지 않는다. 차우는 담백한 웃음을 지으면서 첸 부인이 살고 있을 집의 문을 지나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차우는 굳이 그 문을 열어 그곳에 첸 부인이 사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의 비밀과 그녀에 대한 마음은 사원 속에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웃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때의 추억이 생각이 나서 웃었을 것이다. 그리고, 혹여나 그녀가 그곳에 사는 사람이 맞다면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대사와 별 다른 설명이 없더라도 마지막 씬의 웃음의 의미를 우리는 안다.





In the Mood for Love 그리고 花樣年華

 

 혹자는 이 영화에 대해 "불륜을 너무 아름답게 그린 것 아니냐?","불륜을 방조하는 영화가 아니냐?"하는 이야기를 하며 이 영화를 혹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 내내 나오듯이 왕가위는 그들의 불륜이 정당하다거나 아름답다거나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영화적 재미와 진행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불륜이란 소재를 가지고 왔을 뿐이다.


 불륜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의 도덕과 의리를 지키려 하는 둘의 모습과

 인간이기에 물 밀듯이 밀려오는 감정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남자와 

 그런 남자와의 약속을 위해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자의 모습을 통해 


 사랑이라는 복잡 오묘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와 그 사랑을 잊고 살아가려는 사람의 처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다른 관점으로는 이 영화의 감독은 왕가위이기에 영화를 예술적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 홍콩 사람들의 '홍콩반환' 전을 추억하는 영화라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의 초기작 중 하나인 '아비정전'에서는 주인공 '아비'를 통해 영국령으로 끝까지 남을지, 중국으로 반환이 될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홍콩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야기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홍콩 반환' 전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때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올발랐고, 지금의 모든 것이 불행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그 추억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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