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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Jun 13. 2024

조금

29문장

조금. 정말 조금만큼만 우울 한 스푼, 아니 한 방울 톡. 그러면 내 눈앞엔 연보랏빛 필터가 씌워져. 황홀해서 눈물 날 것 같은 마음 말이야. 내 머릿속에 쌓인 종이 하나하나를 들춰봐. 이거 한 장, 저거 한 장. 그리고 몇 장더. 어? 몇 장 없네? 이래저래 다 해치워 버릴 수 있겠어. 그럼 좋아. 나는 지금 이 연보라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거야.


가만히, 가만히, 안으로 침잠해 보자. 붕붕 뜨려는 마음도 지그시 눌러 아래로 내려가보는 거야. 살짝 눈을 돌려 푸르른 숲을 바라봐. 초록은 호젓한 마음으로 그저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 스쳐지나 봤다면 흔들리는지 몰랐을 거야. 초점이 세밀해지며 울창한 숲은 한 그루의 나무, 그리고 가느다란 가지 하나를 바라보는 거야. 흔들리고 있어. 힘겨움이 아니야. 그냥 스스로를 불어오는 바람에 맡기고 이리로 저리로 아른하게 움직이는 거지.


부드러운 가지 하나하나가 모인 숲은 내가 누워도 좋을 푹신한 자리 같아. 차분히 내려앉은 내 마음을 기대어도 아무 걱정 없겠어. 왼쪽 오른쪽, 앞으로 뒤로 쉬지 않고 흔들리는 나의 마음이야. 절대 넘어질 일 없다는 걸 알아. 부드럽고 아름다운 흔들림이라는 걸 알아.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황홀한 거지. 이 순간순간이 내가 살아있음이고 이를 알아챔이 또 다른 행복이겠지. 맞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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