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야감 May 20. 2024

수학의 잔인함

28문장

수는 세상을 정확하게 헤아리게 도와준다. 이곳에는 사람이 5명 있다. 이 사람의 몸무게는 70kg이다. 올해 작년보다 사과가 1000개 덜 생산되었다. 사과의 가격이 1개당 2,000원이 상승하였다. 올해 A회사의 영업이익은 32억이다. 일자리가 10개 줄어들었다. 평균 결혼 연령은 33세이다. 처럼.


그렇게 헤아린 수는 전략을 세우는데 도움을 준다. 그 전략은 전략을 세우는 자의 생존을 위함이다. 누군가의 생존이 유리해졌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어떤 다른 누군가의 생존이 불리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모든 경우에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수를 활용하여 양의 개념으로 헤아리는 무엇인가는 대체적으로 그렇게 된다. 그래서 수학은 잔인하다.


물리적인 둔기로 타인을 직접적으로 해하는 것은 범죄라고 불리지만 수학이 개입된 각종 복잡한 사회의 수단으로 타인보다 유리한 생존수단을 취하는 행위는 범죄라고 잘 불리지 않는다. 결론만 놓고 보면 비슷한 상황이 되어있을지라도.


수를 외면할수록 생존에서 불리해지는 세상이다. 과거의 낭만이 잘 먹히지 않는다. 그 시절 그렇게 살아도 됐던 것은 세상이 지금보다 성겨서였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첨예해진 지금에, 날카로운 숫자는 그 어떤 것보다 잔인한 무기이다. 너무도 세련되게,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내 생존을 도모할 수 있으니까.


교육현장 일선에 있는 교사로서 많은 것이 불편한 요즘이다. 선발이라는 것을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아니 사실상 거의 전부인듯한 이 시스템에서 이 모든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자신의 영역에서 꽤나 성공한, 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고, 낭만과 가까워 보이는 기안84가 대학교 강연에서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말 한마디.


"안타깝지만 티오는 정해져 있어요. 모두가 다 특별할 순 없어요. 아, 그런데 돈은 많이 벌어야 돼요"


그래, 그렇다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삶은 더러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