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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May 13. 2024

삶은 더러워

27문장

세상은 더럽다. 남자는 어릴 때부터 이미 그것을 알았다. 가진 자는 편하게 누리고 없는 자는 치열하게 분투해야 한다. 가진 자의 당연함 만큼에 못 미치더라도 없는 자의 노력은 개평정도는 받아먹게 해 주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배 곪아 뒤지는 것보다는 쥐똥만큼의 개평이라도 받아먹는 게 낫지.” 남자는 어린 나이에 이미 이 삶의 당연하지만 서글픈 원리를 체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삶은 왜 도박에 비유가 될까? 우리가 넣은 투입에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예측이라는 오만함을 부릴 수 있을 뿐. 남자는 여자가 좋았다. 여자가 가져다주는 기쁨이 너무 컸기에 물질과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투자에 따른 여자들의 응답은 너무나 현실적이거나 잔인했다. 남자는 여자들이 싫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더 현실적이고 잔인한 삶의 원리를 이용하기로.


술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누군가의 서글픔과 누군가의 기쁨이 함께 아스라지는 술잔에는 투명한 액체가 춤추고 있다. 남자는 타고난 입담과 매력적인 호기로 직장 상사와 거래처 직원들을 기쁘게 한다. 그의 부릅뜬 눈에는 하루 몇십, 몇 백만 원의 별풍선을 받는 인터넷 방송 BJ의 광기가, 한편으론 한으로 얼룩진 그의 영혼이 엿보이기도 하였다. “씨발 어차피 더러운 거 나는 갈 때까지 간다.” 남자는 매 순간 생각했다.


에너지를 담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흐르기 마련이다. 기쁨, 웃음도 전염되어 옆 사람을 기쁘게 하기도 하고 분노 역시도 폭발하면 여기저기 불똥을 튀긴다. 나를 찌른 놈에게는 나도 반드시 칼을 꽂아 되갚아준다는 것이 남자의 철칙이다. 은혜도 반드시 갚아야 하지만 원한도 복수로써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담아두지 않는다. 반드시 분출하고 푼다. 내 안에 무언가가 쌓이는 날이, 그날이 바로 자신의 제삿날이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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