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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Apr 25. 2024

글로 그림을 그리다

26문장

유명한 블로거의 글. 글 하나 올리면 순식간에 찍히는 하트와 댓글들. 그리고 몇 년을 연재했어도 매번 참신하고 깊은 인사이트를 담은 글. 그리고 무엇보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 활자 몇 자 뚝딱하였는데 그 글을 읽는 사람 머릿속엔 화폭이 펼쳐진다. 다른 어떤 사람의 글과는, 혹은 어떤 실제 그림과도 다른 독창적이고 유일한 그림. 일제강점기 문인들의 작품에서 풍기는 추운 잿빛 풍경, 하지만 그 안에 똬리 틀고 웅크린 따뜻함. 참 묘한 글이다. 콘텐츠는 유익하거나 재밌어야 하는데 유익하고 재밌기도 한 보기 드문 글들이다.


그래서 내 글은 그림을 그리는가.


가끔 순문학 작품들을 보면 글의 흐름이 이해 가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다. 다시 돌려보아 이해하기도 하지만 물감을 찍어 밑그림을 대강 그리고, 세부묘사를 시도하다 그만둔 찝찝한 느낌으로 그만둘 때가 있다. 그럼에도 작품성을 인정받는 것들이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다 보니, 순문학이라면 아무래도 극상업 문학들보다 독자를 혹은 대중을 덜 신경 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나도 무언가를 전달할 때 최대한 친절하려고 한다. 내 생각을 보다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 각종 맥락과 배경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런다고 해도 놓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내 머릿속의 당연한 전제를 깔고 전개한 글이 누군가에게는 모호한 글자 모음으로 전락할 수도.


전달할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이 높아야 하고 그것을 재미있게 전달할 감각과 캐리어가 좋아야 한다. 그래서 부지런히 느끼고 부지런히 배우고 부지런히 뱉어내야 한다는 것. 인풋에만 과하게 치우쳐있지 않은가 싶을 때 충분히 뱉어내어 그 균형을 맞춰준다. 뱉어내며 밑천 바닥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싶을 때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더욱 집중한다.


세상모든 것이 작품이다. 그 작품을 흡수하여 나를 통과시킨다. 나를 통과하여 나온 그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얼마나 깊은가. 가벼우면서도 깊어지는 것. 그것이 내 지향점이다. 공히 익살을 부리며 한없이 가볍다가도 뱉은 말 하나하나의 깊이가 다른 사람. 요즘 또 한 번 어둠을 집어삼키고 천천히 소화하여 나는 오늘도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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