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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Jun 28. 2024

알아차린 순간들 : 하이라이트

36문장

초등학교 꼬꼬마 시절 코 묻은 돈 모아 산 CD게임들은 대부분 온라인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홀로 구린 컴퓨터 성능으로 긴 로딩시간을 견디며 마우스 클릭 한 땀 한 땀 이뤄낸 게임 엔딩은 감동 그 자체였죠. 마치 걸작 소설을 완독 한 기분 같았습니다. 모든 순간순간 하나에 내 정신을 몰입했기 때문이겠죠.


몇 년 전 언제가 친구가 움직이는 게임화면을 켜둔 채 핸드폰을 충전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이게 뭐야? 왜 게임 안 해?"

"이거 자동모드인데?"


"자동모드? 그럼 게임을 왜 하는 거지?"


마치 인공지능을 레버리지하여 게임을 시키는 형국이었습니다. 편하고 좋을 수 있죠. 하지만 그러면 왜 게임을 하는 거지?라는 의문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알아차림.


수많은 현자들과 석학들이 방점을 두는 개념입니다. 알고리즘값이 입력된 프로그램처럼 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살아갑니다. 게임 자동모드처럼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알아차림이 가능합니다. 내가 무엇을 어디서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그 알아차림은 처음에 어색할지도 모릅니다. 숨 쉬는 것을 의식할 때 그 과정이 부담스러운 처럼요. 그러나 메타인지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알아차림이라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궁극의 경지이자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 삶을 알아차리고 규정하며 과정 하나하나 밟아가는 그 참됨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니까요.


2007년에 입대 후 고된 훈련소 시절이 기억납니다. 군장을 한채 앞뒤로 구르며 고통스러운 기합을 받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나중에 시간이 지나 지금이 기억날까? 그냥 힘들었다는 감각만 생각나고 모든 이미지와 생생함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땅에 대고 앞으로 엎드려 5초 정도 대기하는 그 순간 내 눈에 씌워진 검은색 뿔테 안경, 그 렌즈 위로 튀어있는 몇 톨의 모래, 그리고 멀찌감치 보이는 연병장 전천후학과장의 모습,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단 몇 초 뒤에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이 광경이 사려져 버릴 거라는 그 생생한 감각을 하나의 패키지로 저장했습니다. 동시에 이것마저도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였지만 놀랍게도 15년이 넘게 지난 지금 아직도 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네요.


메타인지는 최고급 소프트웨어입니다. 내 삶의 가치를 몇 배, 몇천 배, 몇억 배를 올려주는 말도 안 되는 치트키입니다. 군대 기합순간의 사례는 1차원적인 추억저장 정도였지만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하죠.


우리는 살아가며 게임 자동모드 같은 NPC모먼트를 피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알아차리며 살아가는 건 생물체로서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나를 관찰하여 그 순간의 특별함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인 생생한 재료는 또 다른 알아차림의 풍부한 밑거름으로, 궁극적으로 의미 있는 존재로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삶은 예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알아차림으로 삶의 하이라이트를 살뜰히 모은 우리는 예술가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오늘 저는 3명과의 교류에서 3번의 알아차림 순간을 생성하였고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꽃 피워갈지 주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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