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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편이 쓰는 난임일기

서울역 차병원

by 전야감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마음가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항상 최악을 상정하는 것. 그 최악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단계별로 존재해야 하며, 거기서 높은 단계는 풍부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목표를 최선보다는 차악 쪽으로 잡는 것이다. 이러면 보통 설정한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되며 그것으로 멘탈을 안정화시키기에 용이하다. 누군가는 이것을 일컬어 염세적이다고 할지 모르나 나는 실용적이다라고 명명한다.


우리가 아이를 가지고자 시도하는 데 있어서의 최악은 갖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상상력을 덧붙이면 더한 것도 존재하지만 맥락상 이 정도만 서술하기로 한다. 그렇게 아이를 가지지 못했을 때의 우리 마음가짐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계획도 어느 정도 마련해 둔다. 이런 기본 마인드셋을 가지고 난임시술에 임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와이프는 이를 공감하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것을 옆에서 케어하는 것이 내 몫이라는 것 역시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나는 자신 있다.


첫 난임시술을 위해서는 난자, 정자 검사가 필요했다. 지역의 이름 있는 난임병원으로 향했다. 검사결과에 따라 난임시술을 바로 행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이었다. 와이프는 어딘가 께름칙한 병원 분위기와 초음파 검사에 임하는 의사의 성실도가 마음에 걸린다고 하였다. 난임시술에는 정서적인 요소가 매우 큰 역할을 하는 만큼 부정적인 요소는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 내내 먹을 비싼 영양제를 구입하여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난임은 바로 끝판왕으로 가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듣게 되었다.

임신 영양 보조제 퍼틸케어


대한민국의 난임 끝판왕은 다름 아닌 차병원. 그 끝판왕 랭킹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그곳이라 했다. 그곳은 5일 배아 배양으로 명성이 높은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 계신 윤태기 원장님, 일명 삼신할배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가 삼신할배라는 닉네임을 얻게 된 건 배아를 적절한 타이밍에 자궁에 이식하는 손기술로 유명하다는 것. 그의 손을 거쳐 수많은 생명을 탄생시켜왔다고 한다.


차병원도 여러 지점이 있지만 삼신할배가 계신 곳은 바로 서울스퀘어 차병원. 서울역 바로 옆에 인접해 있어 지방에서 오는 시술자들이 접근하기 용이한 곳이다. 2021년 10월 어느 날 그곳을 찾았다. 와이프 혼자 먼저 방문했었고 나는 2번째 방문에 처음으로 함께했다. 와이프와 나는 이동시간과 서로의 직장 스케줄을 치밀하게 고려해야 했다. 난임시술은 여자의 신체리듬에 맞춰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술 스케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는 어려운 점이 있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넘쳐나는 서울역 차병원에서는 더욱이.


병원의 입구에는 차병원이 자랑하는 여러 채의 배양통(?)이 있다. 그것으로 인해 약간은 아기공장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수많은 방문자들을 접수대, 초음파실, 진료실, 채혈실, 주사실 등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곳의 유기적인 시스템이 그 인상을 더해준다. 한편 자궁 내벽 같은 내부 디자인과 따뜻하고 안정된 조명, 온도, 넓은 공간에 여기저기 비치된 편안한 의자들로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XXX 님]


안내판에 아내 이름이 뜨고 우리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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