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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윤 Sep 03. 2022

세기의 이혼(?) '사랑의 상대성'

조 디마지오와 메릴린 먼로의 엇갈림

1954년 1월 14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교회에서 메릴린 먼로와 조 디마지오는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그로부터 274일 후인 10월 27일, 그들은 갈라서게 된다. 그들의 결혼 생활에 결정적인 균열이 생긴 것은 9월 말이었다고 한다. 결혼한 지 8개월째. 먼로가 맨해튼에서 빌리 와일더 감독의 '7년 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1955년)을 찍고 있을 때다.


그 무렵, 이미 생활방식과 생각의 차이가 커,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고 한다. 다만 디마지오는 적당한 계기가 있으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먼로를 보기 위해 촬영 현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디마지오는 참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 유명한 '환풍구 장면'이다.


야구기자 조셉 더소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먼로가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지하철 환풍구 위에 다리를 벌리고 서자, 그 아래에 설치된 환풍기 바람이 불어 하얀 스커트가 휙 말려 올라가고 허벅지를 노출하는 장면으로, 통행인이 가장 적은 한밤중에 촬영하게 됐다. 그런데도 구경꾼이 경찰 바리케이드 뒤로 가득 모였고, 먼로의 스커트가 올라갈 때마다 휘파람을 불고 함성을 질렀다. (중략) 그것을 보는 디마지오의 얼굴은 금세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디마지오가 이혼을 결심한 그 장면은, 얄궂게도 영화 역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회자하고 있다. 또 그 촬영 장면을 완벽하게 재현한 것이 '사랑의 상대성'(Insignificance/1985년)이다.


영화는 뉴욕 루스벨트 호텔에 머무는 천재 '교수'(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그의 방에 섹시 심벌인 '배우'(먼로)와 슈퍼스타인 '야구선수'(디마지오), 그리고 반공을 앞세워 마녀사냥을 한 '상원의원'(조셉 매카시)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 4명은 각자 정신적 상실감과 고민을 안고 있다.


'배우'는 남자의 상상에서 나온 여자를 연기하는 데 질려 있다. 그리고 외모가 아름다우니까, 내면은 백치로 좋다는 남자의 시각에도 정나미는 이미 뚝뚝 떨어진 상황. 교수 앞에서 자신이 이해한 특수상대성이론을 설명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압권!


'교수'는 참혹한 홀로코스트를 겪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데다가, 히로시마 원폭에 대한 일말의 죄의식도 느낀다. 또한, 그것이 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야구선수'의 관심은 오로지 야구뿐이다. 또 그의 이상적인 아내는 아이를 낳고 잘 기르는, 이른바 현모양처다. 그런데 실제 아내는, 겉은 아름답지만 몸 안은 너덜너덜해 유산만 한다.


'상원의원'은 지나치게 엄격한 청교도 교육이 영향을 줘, 남자 구실도 못하는 상태. 그 좌절감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은 게 '마녀사냥'이다. 그런데 남자들의 상실감과 고민은 여자인 배우에게 모두 흡수된다. 이것은 배우가 바란 게 아니다. 남자들이 멋대로 주입한 것이다.


배우는 교수의 서류를 압수하기 위해 찾아온 상원의원에게 맞아 붉은 피를 흘린다. 자궁에서. 유산에 따른 피다. 그리고 이 피는 상원의원뿐만이 아니라 교수나 야구선수에게도 책임이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상의 모든 남자에게 책임이 있다.


영화에서 두 차례 나오는 침대 시트의 피를 떠올려보자. 한 번은 교수의 환각 속에서 시트에 피가 번진다. 또 다른 한 번은 배우가 시트에서 자기 피를 찾아낸다. 이 피는 연관되어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르다. 교수의 피는 핵전쟁이 초래하는 세계의 종말을 뜻한다. 반면, 배우의 피는 자신의 자궁에서 핵폭발이 일어나 게 세계 멸망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자궁의 핵폭발. 배우를 바라보는 남자의 욕망이다.


실제 메릴린 먼로의 삶도 그렇다. 굳이 애슐리 쥬드와 미라 소르비노가 각각의 먼로를 연기한 '노마진 앤 마릴린'(Norma Jean & Marilyn/1996년)을 보지 않더라도 대개 알고 있다. 먼로는 디마지오와 이혼한 후, 서로 신뢰하는 사이가 되는 교수와 같은 지식인 아서 밀러와 3번째로 결혼한다. 이번만큼은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이를 유산하며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결과적으로 밀러 역시 이전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먼로의 자궁에 핵폭탄을 투하했을 뿐이다. 그 후의 남자도 다르지 않다. 예를 들면 존 F. 케네디는 쿠바에 핵폭탄 투하를 단념하는 대신에, 먼로의 자궁에 모두 쏟아붓는다.


요컨대, 출산을 거부하는 자궁은 침략과 파괴, 그리고 노동을 절대시하는 남성에 대한 거부를 뜻한다. 아무것도 낳지 않는 자궁.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즉 무의미한 것이다.


지성과 미모, 운동능력, 그리고 반공이라는 이름의 광신. 1940년대는 어느 시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이 재능과 외모, 그리고 신념이 함께한 시대였다. 그러나 남은 것은 번영이 아닌 배우의 웃음소리뿐. 한때의 모든 영광도, 결국에는 무의미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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