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커브를 한 번 더

눈이 본 장면이 활자로, 그 농밀한 감동

by 손윤


야마자와 준지를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르게 한 「에나쓰의 21구」를 비롯해 8편의 스포츠 에세이를 묶은 것이다. 이 가운데 야구와 관련한 것은 4편. 첫 편이자 이 책의 시작인 「8월의 칵테일 광선」은 공 하나가 그리는 일순간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단 '1구'가 인생을 바꾸어 버리는 것은 일어날 법한 이야기일까. '일순간'으로 바꾸어 말해도 좋다. 그것은 한여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름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름은 때때로 무엇인가를 틀어지게 하거나 하는 법이니까."

야구는 시간제한이 없는 경기다. 일단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야구의 신이라고 해도 알지 못한다. 때로는 9이닝이 2시간도 채 안 되어 끝나기도 하고, 때로는 9이닝도 모자라 연장 20이닝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시간도 5시간 이상이 지나서도 그 승부의 끝을 맺지 못할 때도 있다. 이 「8월의 칵테일 광선」도 1979년 여름 고시엔 대회 3회전에서 벌어진 미노시마 고교와 세이료 고교와의 연장 18회 경기가 그 무대다. 이 끊임없는 이어짐 속에서 야마자와는 한순간을 포착한다.

야구에서 순간이라고 하면, 경기 승패를 가르는 승부처를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야마자와의 눈에 비치는 순간은 경기의 승부처보다 인생의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승자의 환희와 패자의 낙담이 아닌 한순간에 얽힌 감정의 엇갈림이다. 예를 들면, 「에나쓰의 21구」에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에나쓰 유타카가 느낀 감정은 1점 차로 앞선 9회 말 무사 만루의 위기를 벗어난 통쾌함이 아니다. 오히려 주자가 나간 뒤, 불펜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자신에 대한 벤치의 불신을 토로한다.

그런 순간을 야마자와는, 그 공간을 공유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시선과 감정을 다큐멘터리처럼 구성한다. 게다가, 그 문체는 잔디도 없는 맨땅 그라운드처럼 건조하다. '훅'하고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끝없이 날아갈 것처럼 냉정하다. 승부처에 흔하디 흔하게 등장하는 말, '혼신을 다한' 투구나 스윙 같은 주관적 감정의 투영은 어디에도 볼 수 없다. 그러니 당연히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비디오카메라에 들어온 것이 영상이 되듯, 그의 눈에 비친 장면들이 활자가 될 뿐이다.

그 메마른 활자가 감동을 주는 것은, 나약한 인간의 투쟁이 있기 때문이다. 1976년, 구로다 신지는 동향의 대선배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이 직접 영입 제안을 해, 우리나라로 치면 신고선수로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는다. 드래프트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요미우리 주전 투수라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룰 무기, 빠른 공도 있어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입단 사진을 찍을 때, 빌려 입은 '25번'이었던 등번호 숫자는 점점 커져만 가, 3년 뒤에는 '94번'이 된다. 신분 또한, 더는 선수가 아닌 타격 투수(배팅볼 투수). 그런데도 「등번호 94」는 실망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뀐 상황에 적응하며 요령을 터득해나간다.

"투수는, 타자를 잡아내, 아웃카운트를 늘려, 점수를 내주지 않고 던져, 그래서 승리를 올려 가치를 인정받는 직업이죠. 그것이 투수라는 거지요, 본래는. 우리는 정반대입니다. 어떻게 해서 좋은 타이밍에 맞춰줄까.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 타자가 좋은 감각을 유지하도록 하자고, 그것만 생각하고 있는 거지요. 그렇기에, 한가운데만 치기 좋은 공을 던지는 것은, 프로 타격 투수는 아니에요. 밋밋한 공만 던진다면 야단맞아요. 한 타자에게 2, 3구는 아슬아슬한 스트라이크 존에 꽉 찬 공을 던진다. 실제 경기에서 상대 투수가 던져올 정도의 공을 던지는 거죠. 그것을 할 줄 모르면, 제구실을 못 하는 거예요. 타격 투수라고 해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정돈 있어요."

야구광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바다와 싸우는 노인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지는 법은 없다. 사람은 파멸당하는 일은 있지만, 결코 지는 법은 없다." 그 말처럼 이 책의 타이틀인 「슬로커브를 한 번 더」에서 가와바타 슌스케는 "신장은 173cm. 스포츠를 하는 고교생치곤 별달리 크지는 않다. 체중은 67kg"의 평범한 체격에 투수의 생명인 속구 스피드는 시속 130km 안팎. 그런 그의 주 무기는 스피드건에 시속 60~70km로 찍히는 슬로 커브다. 초등학생이 던지는 듯한 그 느린 공이, 타자를 농락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다.

그럼에도 가와바타는 슬로 커브로 타자를 돌려세웠을 때, 환호하지는 않는다. 상대 타자가 슬로 커브에 멀뚱멀뚱한 눈으로 지켜보거나 커다란 헛스윙을 해도, 상대를 비웃기보다 "가장 자기다움"을 느낄 뿐이다. 그 느린 "공이 마치 자기 자신처럼 생각돼, 이상하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슬로 커브. 커다란 호선을 그리는 그 궤도는 인생과 닮았다. 상승이 있으면 추락이 있다. 상승에 우쭐해할 것도, 추락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 반복이, 야구의, 인생의 숙명이니까.

"포수 미야시타가 사인을 보냈다. 가와바타는 그 손끝을 봤다. 그 손가락의 형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슬로 커브를 한 번 더' 가와바타 슌스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선, 천천히 슬로 커브를 던진다. 평소와 같은 모션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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