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인 아틀란티스

야구 글러브에 깃든 역사

by 손윤


영화는 50세인 사진작가 바비 가필드(데이비드 모스 분)가 불알친구 살리의 부고 소식과 함께 소포로 낡은 글러브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수십 년 만에 찾은 고향. 그곳에서 그의 기억은 11살이던 1960년 초여름으로 되돌아간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바비는 근처에 사는 살리, 캐럴과 함께 매일 즐겁게 뛰어놀며, 그 아픔을 잊고 지낸다. 그 즐거운 놀이 가운데 하나가 야구였다.


한 명은 던지고, 다른 한 명은 친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수비수가 된다. 이것을 바비와 살리, 캐럴이 번갈아 가며 하는 3인 야구.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어느새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됐지만, 예전에는 공터나 큰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니 실제로 다들 그렇게 야구를 배웠다. 공터는 우리의 스타디움이었으며, 큰길가는 필드였다. 그런데 사회가 발전하며 우리 곁에 있던 그 스타디움과 필드는 사라지고, 그것을 대신해 이른바 조직화한 야구단이 자리를 잡는다.


체계적인 연습과 운영이 이루어지는 초등학교 야구부나 리틀 야구 팀이 야구를 하는 곳이 됐다. 그러면서 오로지 야구만 강조된다. 이르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자나 깨나 야구. 일 년 365일 가운데 며칠을 제외하곤 전문 야구선수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리틀 야구 감독 가운데는 "우리(팀)는 초등학교 야구부만큼 연습을 시킨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도 가끔 만나게 된다.


그런데 시설과 장비, 운영 등 모든 면에서 월등하게 나아졌지만,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도 있다. 과거에는, 야구를 비롯한 모든 놀이가 그날그날의 상황, 예를 들면 인원수나 장비, 장소 등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됐다. 게다가, 그것을 스스로 생각해냈으며, 때로는 새로운 규칙이나 놀이도 만들어냈다. 어느 날은 도루가 없어지기도 하고(도루는 있는 날이 거의 없었지만), 없던 파울라인이 생길 때도 있었다. 또 스트라이크 존도 벽돌 16개가 25개로 늘어나거나 거꾸로 줄어들거나 했다. 그런데 지금은 꽉 짜인 곳에 들어가 아무런 생각 없이(물론, 나름대로 생각은 하지만) 그 조직의 규칙과 방식에 따라간다. 그와 함께, 창의성과 자발성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희미해진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영화 속 살리의 글러브에 있지만, 요즘 아이의 글러브에는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여러 가지 기억이다. 살리의 글러브에는 11살, 그 시절 바비와의 추억이 응축되어 있다. 여기에 친구들과 야구를 했던 기억만이 아니라, 캐럴과 바비 어머니에게 닥친 개인적인 상처는 물론, '매카시 광풍'이 겹쳐지는 테드와 얽힌 오욕의 시대적 흐름까지. 즐거움만이 아니라 아픔까지, 개인의 추억만이 아닌 시대적 흐름까지 고스란히 배여 있다. 그런데 지금의 글러브에는 어떤 기억이 담겨 있을까. 좀 과장되게 말하면, 야구와 관련한 기억만이 전부는 아닐까.


글러브를 통한 다양한 기억의 되새김질. 그것이 사라진 시대에 사는 것은 아닐까.


야구만 있을 뿐, 삶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보다 더 다양한 사회가 된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더 획일화된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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