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깜빡깜빡 무언가를 자주 잊는 아이였다. 어린 나는 호기심이 많은 만큼 아주 산만했다. 엄마는 집 열쇠를 자주 잊어서 담을 자주 넘는 내게 열쇠에 긴 끈을 달아 목에 걸어 주셨는데, 문제는 그 열쇠를 아침마다 목에 거는 것마저 자주 잊었다는 거다. 어린 시절 나는 자주 동네를 배회했다.
언젠가 집 열쇠를 잊은 날 친구와 거리를 배회하던 나는 시간을 잊었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집은 난리가 났다. 그날 열쇠를 잊은 것도 나였고, 억울했던 것도 나였고, 혼이 난 것도 나였다. 그냥 왠지 담을 넘어 들어갈 만큼 집에 가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열쇠가 없는데 어떻게 집에 들어와?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됐잖아?" 이상하리만큼 당당하게 외쳤으나 이내 상황 파악이 되었고, 혼나지 않으려 눈물을 글썽였으나 안타깝게도 엄마는 나를 잘 알았다. 그때까지 나는 너무 잘 우는 아이였다. 너무 자주 우는 건 인생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나는 깜빡깜빡 무언가를 잘 잊는 사람이었지만 또 반대로 무언가를 잘 기억하는 사람이라서 열쇠는 나의 트라우마가 되었고, 그 이후 강박증이라는 게 생겼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봤는데 강박증은 우울증의 전조 증상이라 했다.
하지만 늘 일기를 쓰던 내가 가족들이 볼까 꽁꽁 숨기던 비밀 일기장에 꼭 걸어두던 자물쇠 열쇠는 언제나 필통 안에 고이 들어있었다. 어린 시절 집 열쇠는 내게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던 거다. 선택적 망각과 선택적 강박을 벗어날 열쇠는 열쇠 그 자체였다. 내게 중요한 열쇠와 그렇지 않은 열쇠를 구분하는 모호한 기준점을 없애는 것. 그게 바로 집 열쇠의 의미였다.
타로 카드에서는 열쇠카드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바로 상황을 해결할 그야말로 열쇠 같은 존재지만, 요즘은 대부분의 열쇠가 비밀번호로 대체되었으니 열쇠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어떤 의미로 해석될까. 우리에게 아주 중요했던 어떤 것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며 의미가 퇴색된다. 마치 오래된 연인의 사랑처럼 말이다.
예전엔 식구들만큼의 열쇠가 필요했고 꼭 열쇠를 가진 사람만 문을 열 수 있었지만 요즘엔 열쇠가 디지털로 바뀌면서 열쇠는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열쇠는 누구도 가질 수 없고, 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가치가 되었다. 소중함이 퇴색된 만큼 간절함도 사라졌다. 이제 내겐 긴 줄에 매달린 소중한 열쇠는 없다.
소중한 걸 놓치지 않으려면 편해질수록 예의가 필요하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지닌 사람이 나뿐인 것처럼 서로가 쥔 열쇠를 소중히 여길 마음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