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조금 아래를 편안하게 바라보는 삶

by 김소연



#18. 금 아래를 편안하게 바라보는 삶





자꾸만 옮겨가는 마음




삶에 열정을 갖고 어떻게든 아주 작은 희망을 발견하려고 할 때는 주로 타로나 점을 봤다. 미래의 일에 대해 말하는 건 아주 조심스럽지만, 그들의 말엔 거침이 없었다. 아주 믿음직스러웠다. 사람들 말을 들으면 내 삶이 조금 더 위로 올라갈 것만 같았다. 그건 아주 중독성이 있는 일이었다. 내 유튜브 구독목록엔 타로마스터들이 아주 많았고, 무당들도 많았다. 누군가 그런 걸 믿겠냐며 질책해도 소용없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종일 그걸 붙잡고 정신승리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으니까.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처럼, 희대의 시기범에게 홀린 사람처럼. 어느새 그걸 맹신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연관 검색으로 유튜브 무당들에게 사기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다큐를 보고나선 내 삶에 대해 점검이 필요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들의 말에 홀려 맞지도 않는 타로점을 보느라 허비한 시간보다 더 안타까웠던 건 자꾸만 기대하고 실망하는 거였다. 나름 긍정적인 것도 있었는데, 일 년 넘게 타로를 보다 보니 타로를 정식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나도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대충 감이 왔다는 거다. 가 만약 타로마스터가 된다면 그간 배운 내용이 아마 아주 유용할 거다. 하지만, 유튜브 타로마스터들은 어떤 카드를 뽑더라도 좋은 말만 한다. 나쁜 카드를 뽑으면 이제 고생 끝났다고 말할 거라면 좋은 카드를 뽑으면 좋은 일이 끝났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들의 상술에 놀아났던 거다. 생각해보면 직접 만나본 타로마스터들은 좋은 말만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 다큐를 보고 나서 다른 시각으로 영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은 말만 하는 건, 구독자를 늘리려는 의도 같았다. 지만, 매사에 긍정적인 것은 어느 때에는 독약과 같다. 군가 내게 아무런 이득없이 달콤한 사탕을 내민다면 의심부터 하고 봐야 한다.



그 이후엔 좋아하는 연예인에 심취해 내 유튜브는 그로 가득 채워졌다. 하지만 건 중독성이 덜했는지 매일 그를 보다 보니 조금 질리는 것도 같았다. 나는 아마도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내 삶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다른 프로그램에 나와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은 식상함이 느껴졌으니까. 그 이후엔 노숙자와 고시원,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의 다큐를 보며 눈시울을 적셨고, 그분들의 삶에 도움을 주던 목사님이 운영하는 우리나라 최초 무료 병원인 다일천사병원의 후원 계좌를 메모해두었다. 또 그 이후엔 가난한 여성들의 짠내 나는 영상을 보며 내가 저들보다 나은가 생각했다가, 캠핑카로 전국일주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지기도 했다. 요즘엔 산골마을의 초소형 주택에서 최소한의 것들만 가지고 사는 미니멀리스트들을 보며 안정을 찾았다. 아주 작은 그 집들이 왜 편안해 보일까. 나로 말하자면, 좁은 집에 살며 우울증이 도졌던 사람 아닌가. 그리고 시골은 딱 질색인데. 아무리 봐도 관심사가 수시로 바뀌는 나 같은 사람이 관심 가질 집은 아니었다. 여행을 가도 삼일이면 질려버리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조금 아래를 바라보는 게 안정적이니까



가 어떤 사람을 부러워한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가 한때 부러워했던 사람은 사랑을 듬뿍 받은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그저 누군가의 정제된 겉모습뿐일지라도. 실 어느 가정이나 문제 한두 가지 없는 집이 없다던데, 그럼에도 반듯한 겉모습을 유지할 어른스러움을 동경하는 건지도 모른다. 늘 나만 피해자이고 내가 가진 고민만 크게 인식하 실체도 없는 원망거리를 찾았다. 여태 나는 늘 사랑받지 못한 걸 원망하며 살았는데, 실상은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며 살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랑받지 못해서 주는 방법도 모른다며 핑곗거리도 완벽했다.



나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완벽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행복해 보이는 누군가가 정말 뼛속까지 행복한 사람인지 어느 정도 우울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부러워하는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또 성격이 좋아 보이는 어떤 사람은 성공을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이 바뀔수록 나는 더 자주 좌절하게 될 거다. 내가 요즘 관심을 가지는 누군가는 스스로 망한 인생이라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누구나 쓸모가 있는 인생이다.



항상 아래를 보지 말고 위를 보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나는 너무 위를 보느라 목이 아프고 어지러웠다. 물론 사회적 성공이나 통장잔고 같은 걸로 위아래를 나눌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많은 친구를 사귀려고 하는 것보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나누며 사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으니. 때론 산 중턱에 서서 산 꼭대기를 바라보는 것보다 산 아래의 풍경을 바라보는 게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처럼. 점점 시들어가는 삶에 대한 열정에도, 죽어야 할 이유를 찾는 게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보다 더 쉬울 거라 생각되더라도. 매일매일 하락하는 주식도 언젠가는 오를 날이 있으니까. 금은 아래를 바라보는 내 삶도 언젠가는 지금보다 조금 더 위를 아래처럼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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