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께’라는 제목을 클릭한 이유

by 야호너구리

메일함에 ‘작가님께’로 시작하는 제목이 하나 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스팸으로 넘겼을 텐데, 그날은 괜히 클릭했다. 순간 생각했다. 드디어 나도 책을 낼 수 있는 건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정말 짧게, 인세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 서점에 깔린 책, 누군가 내 이름을 검색하는 장면까지. 그 상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과하게 진행됐다.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몇 초였을 것이다.


메일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됐다. 자가 출판이었다. 출판사는 준비되어 있었고, 인쇄도, 유통도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비용은 작가 부담이었다. 아주 정중하게, 친절하게, 마치 이게 당연한 선택지인 것처럼 설명돼 있었다. 틀린 말은 없었다. 요즘은 다들 이렇게 한다고도 했다.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최소한 무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괜히 식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마음이 빠르게 식었다. 내가 돈을 내서 책을 낸다는 사실보다도, 방금 전까지 혼자서 너무 멀리 가 있었던 게 조금 민망해졌다. 인세를 상상하던 몇 초가 부끄러워서, 메일을 다시 위에서부터 읽어봤다. 문장들은 그대로였고, 의미도 변하지 않았는데, 읽는 쪽만 달라져 있었다.


자가 출판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그 방식으로 책을 내면, 이건 성취라기보다는 선택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준비됐다는 증명보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확인. 돈을 내고 물건을 만드는 일은 익숙하다. 문제는 그게 책일 때도 같은 감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메일을 닫고 나서 잠깐 멍해졌다. 정말로 출판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누군가 내 글을 필요로 해서, 비용이 아니라 판단으로 연락을 주는 날. 그런 날이 실제로 존재하긴 할까. 생각해보면 주변에 그런 사례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 경로가 나에게도 열려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글을 쓴다. 책을 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제안 메일 하나로 괜히 흔들렸던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출판이라는 단어에 반사적으로 반응한 나를 조금 식히기 위해서. 아직은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메일은 보관함으로 옮겨졌다. 언젠가 다시 열어볼 수도 있고, 그대로 잊힐 수도 있다. 출판할 수 있는 날이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다. 다만 오늘은, 그 가능성을 잠깐 상상했다는 사실만 남는다. 그리고 그 상상이 끝났을 때 느껴진, 약간의 공허함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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