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이 아닌 전략

by 야호너구리

길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거의 동시에 정말 나쁘다는 생각이 따라온다. 두 감정은 늘 같이 온다. 표정은 공손하고 말투는 낮지만, 그들이 말을 거는 방식은 이상할 정도로 정확하다. 아무에게나 다가가지 않는다. 발걸음이 빠른 사람은 피하고, 통화 중인 사람은 지나친다. 대신 어깨가 조금 내려간 사람, 표정이 흐릿한 사람, 오늘 하루가 버거워 보이는 사람에게만 말을 건다. 그 선택이 반복될수록 우연은 아니다.


사이비 종교 이야기만은 아니다. 예전에 선거 알바를 했을 때도 비슷한 장면을 봤다. 같이 일하던 사람 중 한 명이 다단계에 빠져 있었다. 정확히는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넘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말투는 친절했고, 설명은 길었고, 눈빛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나를 꽤 끈질기게 꼬셨다.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고,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고 했다. 아쉽게도, 아니 다행히도 나는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때의 나는 신념이 강해서라기보다는 계산이 먼저 작동했을 뿐이다.


그 사람 옆에는 늘 여자친구라는 사람이 함께 있었다. 둘은 연인이라고 했지만 서로에게 존댓말을 썼다. 처음엔 그냥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도 같은 다단계였을 가능성이 크다. 관계의 친밀함보다 역할이 먼저였던 사이. 함께 설명하고, 함께 설득하고, 함께 빠져나갈 틈을 만들지 않는 구조였다.


그들은 늘 책을 권했다. 인생을 바꾼 책이라며 꼭 읽어보라고 했다. 제목을 듣는 순간 감이 왔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다단계의 바이블처럼 소비되는 책이었다. 노동보다는 마인드, 성실함보다는 네트워크, 천천히 쌓는 것보다는 빨리 넘어가는 이야기가 반복됐다. 읽지 않아도 어떤 세계관인지 알 것 같았다.


선거 알바 현장에는 남자가 셋 있었다. 나, 이미 깊이 빠져 있던 사람, 그리고 그에게 거의 넘어간 사람.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했지만, 방향은 달랐다. 나는 그들을 말려보려고 애둘러서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몸을 써서 번 돈이 얼마나 단단한지, 꾸준함이 결국 남는다는 이야기들. 하지만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않기로 선택한 얼굴들이었다. 이미 다른 설명이 더 매력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 뒤로 연락은 끊겼다. 아주 자연스럽게.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가끔 궁금해진다. 여전히 그 구조 안에서 누군가를 붙잡고 있을지, 조용히 빠져나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고 있을지. 혹은 또 다른 형태의 믿음을 옮겨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넘어가던 그 경계 어딘가에서.


그래서 길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얼굴들이 겹쳐 보인다. 그들도 어딘가에서는 상처받았고,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안타깝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들은 다른 사람의 취약함을 겨냥한다. 괜찮아 보이시지 않네요, 요즘 많이 힘드시죠 같은 문장들. 질문처럼 들리지만 이미 답을 정해놓은 말들. 그 순간, 안타까움은 불쾌함으로 바뀐다.


이들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들이 겪었던 불안을, 다른 사람의 불안 위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구원이라는 말로 접근하지만, 방식은 침범에 가깝다.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을 골라 말을 거는 건 친절이 아니라 전략이다.


그래서 나는 길을 걸을 때 괜히 어깨를 편다. 표정을 정리하고, 괜찮은 척을 한다.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인지, 이미 많이 닳아버린 반사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몸이 먼저 그렇게 움직인다.


안타깝지만, 정말 나쁘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방식까지 정당해지는 건 아니다. 특히 누군가의 약한 순간을 노리는 방식이라면 더 그렇다. 그들은 오늘도 길 위에 서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들을 피해 걷게 될 것이다. 이 도시에서는, 약해 보이지 않는 것조차 하나의 방어가 된다. 그 사실이 가장 씁쓸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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