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by 야호너구리

어린 시절 아버지는 자상한 아버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말수가 적었고, 감정 표현도 거의 없었다. 전형적인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다. 칭찬을 들은 기억도 많지 않고, 안아준 기억은 더 희미하다. 그래서인지 같이 축구를 해주는 친구 아버지를 부러워 한 시절이 있었고 우리의 공기는 늘 조금 단단하고 무거웠다.


크리스마스만큼은 달랐다. 크리스마스 아침이면 머리맡에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포장지는 평범했고, 카드도 없었다. 그래도 상자를 열면 내가 가장 좋아하던 레고가 들어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세트는 아니었지만,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우주선, 해적선,성세트등) 난 이미 집이 그렇게 풍족하지 않았다는 것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산타를 믿지는 않았다. 대신 이 레고가 어디서 왔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산타 할아버지를 믿은 적이 없다. 산타는 늘 아버지였다. 생일과 별개로 크리스마스에는 아버지가 선물을 주시구나 라고 생각 했다. 밤늦게 퇴근하고, 다음 날 새벽같이 다시 일어나야 했던 사람이 굳이 레고를 사서 몰래 놓아두고 갔다는 걸,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게 서로에게 가장 편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적다. 감정을 꺼내는 법도 배우지 않았다. 대신 시간이 조금씩 얼굴에 남아 있다. 예전보다 어깨가 내려가 있고, 움직임이 느려졌다. 예전에는 산타 아버지였던 사람이, 어느새 진짜 산타 할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가끔 실감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는 내가 선물을 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거창한 보답이나 감사 인사가 아니라, 그냥 예전처럼 아무 말 없이 놓아둘 수 있는 무언가. 하지만 막상 뭘 드려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버지는 필요한 걸 잘 말하지 않는 사람이고, 나는 여전히 아버지라는 사람의 취향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직은 선물을 사지 못했다. 대신 어린 시절 레고 상자를 열던 감각만 가끔 떠올린다. 포장을 뜯기 전의 묵직함, 설명서를 펼치기 전의 기대, 그리고 그 모든 게 누군가의 선택이었다는 사실. 그 선택이 말보다 많았다는 걸, 이제야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된다.


산타 아버지에서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아버지에게, 언젠가는 나도 아무 말 없이 무언가를 놓아두게 될까. 그날이 오면, 아마 나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다. 말은 없고, 설명도 없고, 그냥 그게 최선인 것처럼.


늘 감사드립니다.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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