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굶는다.

by 야호너구리

점심을 굶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기 때문이다.


배가 고픈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겠지만, 오늘의 허기는 자발적이다.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고, 가격을 훑고, 카드를 내밀고, 결제 알림 문자를 받는 그 일련의 과정이 오늘은 유독 피곤하다. 단돈 만 원 남짓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그 돈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속도가 내가 돈을 버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이 신경을 긁는다.


굶는다고 해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후 세 시쯤 되면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명치 안쪽이 텅 빈 것처럼 서늘해질 뿐이다. 그래도 버틸 만하다. 나는 이미 이런 공복에 익숙하다. 배보다 먼저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켜는 삶에 꽤 오래 노출돼 있었으니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말은 탐욕처럼 들리지만, 나에게는 생존에 가깝다. 더 잘 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덜 불안해지고 싶어서다. 점심 메뉴 앞에서 천 원 차이로 망설이지 않아도 되는 상태, 4,500원짜리 커피를 사 마시면서 굳이 ‘나를 위한 작은 보상’ 같은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상태. 나는 딱 그 정도의 여유를 상상한다. 상상은 무료라서, 배가 고플수록 더 자주 하게 된다.


얼마 이런 말을 들었다. 돈을 벌고 싶지 않다거나,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 회피다. 라고.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얼굴이 먼저 화끈거렸다. 들킨 느낌이었다. 반박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웃으면서 넘기려다 관뒀다.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거기서 웃으면 내가 더 초라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았다. 나는 회피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못 벌 것 같다는 패배감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 “적당히 벌며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 말들은 내 가치관인 척, 고상한 취향인 척 포장돼 있었지만, 껍질을 벗겨보면 그 안에는 꽤 노골적인 방어기제(어차피 나는 저 경쟁에서 못 이겨 혹은 죽어라 노력해도 부자가 되진 못할 거야)가 들어 있었다.


이 문장들을 직접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대신 욕심없는사람 같은 부드러운 단어로 감싸두었다. 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안 벌겠다고 선택했다고 믿는 편이 훨씬 덜 비참했기 때문이다. 실패자가 아니라 자발적 이탈자가 될 수 있으니까. 이솝 우화 속 여우처럼, 저 포도는 신 포도일 거라고 중얼거리면서, 아니 정신승리하면서.


최악이라고 느낀 건, 그 말이 틀리지 않아서다. 틀렸다면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치가 살짝 조여왔다. 방어기제가 작동할 때의 신체 반응은 늘 비슷하다. 숨이 얕아지고, 어깨가 먼저 굳는다.

회피는 편하다. 기대를 접으면 실망도 줄어들고, 노력하지 않으면 비교도 덜 아프다. 대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 안전하고 조용한 상태를 꽤 오래 유지해왔다. 나름 합리적이라고 착각하면서.


그래서 오늘도 점심을 굶는다.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도, 부자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이 배고픔이 내가 아직 욕심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표시처럼 느껴져서다. 돈을 안 벌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못 벌 자신을 마주하기 싫었던 겁쟁이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의미로. 일종의 벌을 서는 기분으로 공복을 견딘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잘 팔리지 않는다. 우울하고 찌질한 글은 조회수가 잘 안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독자의 시선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스크롤은 빠르고, 사람들은 가볍고 싶어 한다. 내 우울은 클릭되더라도 끝까지 읽히지 않는다. 기분이 가라앉기 전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야 하니까. 세상은 타인의 우울에, 그것도 돈 없고 겁 많은 서른일곱의 넋두리에 오래 발을 담글 만큼 한가하지 않다.


플랫폼은 솔직하다.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밝고 명쾌한 제목은 살아남고, 무거운 문장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좋아요 정도는 달리지만 댓글은 절대 달리지 않는다. 공감은 혼자 소비하고 끝내는 감정이고, 확산은 전시 가능한 감정의 몫이니까.


우울은 상품이 되기 어렵다. 포장이 안 된다. 사용법도 없다. 읽고 나서 당장 나아질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안다. 세상은 해결책을 원하지, 상태를 오래 들여다보거나 관찰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쓴다. 팔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이건 각성도 아니고, 위로도 아니다. 그냥 기록이다. 배고픔과 함께 남는, 조금 불편하고 씁쓸한 기록.


솔직히 말하면, 이쯤 되면 감이 온다. 나는 글로 돈을 벌 타입은 아닌 것 같다는 감이다.


재능이 전혀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너무 슬프니깐. 그렇다고 시장이 원하는 재능은 당연히 없다. 사람들은 빠른 해답을 원하고, 나는 느린 상태를 적는다. 사람들은 성공의 요약본을 원하고, 나는 실패의 거대 도서관을 만든다.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 가깝다.


나는 아마도, 팔기 위해 쓰는 쪽에는 재능이 없다. 제목을 낚시처럼 달지 못하고, 문단 끝에 희망을 붙이지 못한다. 절망을 희석하는 기술도 부족하다. 우울을 콘텐츠로 가공하는 일에 서툴다.


그래서 조회수는 얼마 안된다. 완전히 망하지는 않지만, 기대를 갖기엔 부족하다. 이 정도면 취미로는 그래도 나름 성실하고, 직업으로 삼았다간 아마 절대적으로 굶어죽을것으로 예상된다. 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계속 글을 쓴다. 돈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손을 놓지는 못한 채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 굶는다. 글로 돈을 못 벌 것 같다는 걸 알수록 다른 방식으로라도 벌고 싶어진다. 점심을 굶는 행위가 미래의 부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글이 언젠가 돈이 될 거라는 기대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이 두 가지를 동시에 붙잡고 있다. 팔리지 않는 글과 아직 포기하지 못한 욕심.

우울한 글은 팔리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 이 글도 팔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돈이 아니라 이상태로 그대로 남는다. 서버 어딘가에 검색되지 않는 제목으로 누군가의 아주 구체적인 굶주림으로 쉽게 소비되지 않아서 팔리지 않아서 의외로 오래 버틴다.


지금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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