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귀에 잘 안 들어오는 단어들이 있다. 아스트로제네카, 화이자, 오미크론. 몇 년 전만 해도 뉴스의 첫 줄이었고, 일상 대화의 기본 단어들이었다. 백신 종류를 외우는 게 상식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고, 변이 이름 하나하나에 온도가 붙어 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단어들을 일부러 떠올려야 생각이 난다. 기억에서 밀려났다기보다는, 조용히 접힌 느낌에 가깝다.
그때는 분명히 너무 크게 들렸다. 어디를 가든 같은 단어가 반복됐고, 그 반복이 세계의 리듬처럼 느껴졌다. 오늘의 단어를 모르면 대화에 끼기 어려웠고,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으로 이어졌다. 단어 하나가 생활의 방향을 바꾸던 시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외웠고, 열심히 사용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 단어들은 더 이상 호출되지 않는다. 뉴스에서도 잘 나오지 않고, 일상에서도 굳이 꺼낼 이유가 없다. 사라졌다기보다는 유통이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말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건지, 아니면 잠깐 반짝이는 역할만 맡고 사라지는 건지 헷갈린다. 확실한 건, 그 단어들이 더 이상 지금의 세계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은 내가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다. 새로운 서비스 이름, 약어, 밈, 기술 용어들. 한 번 놓치면 따라잡기 어렵고, 따라잡아도 금방 다른 말로 대체된다. 예전에는 노력하면 따라갈 수 있다는 감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속도가 다르다. 내가 변한 건지, 세상이 변한 건지 구분이 잘 안 된다.
이럴 때면 내가 트렌드에서 밀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뒤처진다는 감각은 단어에서 먼저 온다. 대화를 듣고 있다가,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굳이 묻지 않게 되는 순간. 그때부터 사람은 조용해진다. 말에 끼지 못하는 대신, 듣는 쪽으로 물러난다.
그렇다고 모든 단어를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아스트로제네카와 오미크론을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 단어들은 그 시절의 역할을 다 했고, 우리는 그걸로 충분히 버텼다. 모든 단어를 계속 소유하려 들면, 머리만 무거워진다.
아마도 단어는 반짝이는 쪽에 가깝다. 필요할 때 강하게 빛나고, 역할이 끝나면 조용히 퇴장한다. 문제는 그 교체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속도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몇 개를 놓친다. 그건 실패라기보다는 선택에 가깝다.
요즘은 내가 모르는 단어가 많다는 사실을 예전만큼 불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다 알 필요는 없다는 쪽으로 마음을 옮긴다. 어떤 단어들은 그냥 지나가도 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나는 그걸 전부 따라갈 수는 없다. 대신, 지금 내 귀에 남아 있는 단어들만 잘 붙잡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충분히 바쁜 일이다.